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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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예요?
  • 서영남
  • 승인 2022.05.03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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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용진(가명)씨가 선짓국을 두 그릇이나 말끔히 비웠습니다. 백내장이 악화되어 거의 보이지도 않는 눈을 껌벅거리며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담배 한 개비를 건넸습니다.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혼잣말을 합니다. ‘잠이라도 한 번 푹 잤으면…’ 용진씨는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열 때부터 찾아온 단골손님입니다. 동인천 역전에서 십 년이 넘게 노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지만 주정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다시 재발이 되었습니다. 담요를 마련해 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잃어버립니다. 

용진씨가 잠이라도 푹 잘 수 있도록 조그만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 만 원입니다. 냄새가 심해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목욕탕으로 함께 가서 몸을 씻겨드렸습니다. 옷도 새로 갈아입혔습니다. 이발도 했습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이삿짐이라야 국수집에서 마련한 이불 한 채와 세면도구뿐입니다. 

다음날 얼굴이 굳어진 집주인 아주머니가 월세 보증금을 돌려줍니다. 동인천 역전에서 노숙하던 사람에게는 방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당장 나가 달라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짐을 챙겨서 쉼터를 하려고 마련한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다시 이사한 작은 집에서 용진씨가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데도 운동화를 깨끗하게 씻어 놓았습니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발을 씻고 평소에는 슬리퍼를 신으니 발 냄새가 이젠 거의 나지 않는다고 자랑합니다. 

며칠 후 동인천역에 갔더니 용진씨가 동인천역 광장에 있습니다. 심심해서 놀러 나왔다고 합니다. 노숙할 때 어울리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함께 있던 성만씨가 부탁합니다. 달걀 프라이를 두 개씩 해 주면 참 좋겠는데요, 하고. 다음에 국수집에 오시면 두 개씩 부쳐드리지요. 

용진씨가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된 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민들레 나물을 가져온 봉사자 자매인 지원엄마가 놀란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동인천역을 나오는데 용진씨가 앵벌이를 하고 있고, 돈을 달라고 해서 줄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왔다고 합니다. 술에 많이 취한 것 같다고 합니다. 동인천역으로 달려갔습니다. 술에 취한 용진씨를 부축해서 국수집으로 왔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국수집 건너편의 교회 유치부 올라가는 계단에 함께 앉았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고 합니다. 비상금을 좀 달랍니다. 2만원을 드렸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느냐고 몇 번을 묻습니다. 그럼요, 이제 용진씨 돈이니까 마음대로 쓰셔도 돼요. 

용진씨가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1955년에 화수동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12살 때부터 극장 쇼 단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배고플 땐 아가씨들이 한두 푼 주는 것으로 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누나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가족들을 전부 초청해서 미국에서 결혼도 하고 살다가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곳에 오래 머물기가 어렵지만 자기보고 떠나라고 하기 전까지는 있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언제든지 떠나시고 싶으면 떠나고 또 오고 싶으면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자유롭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용진씨가 이만 원을 들고 비틀거리며 또 동인천역으로 내려갑니다.  

다음날 용진씨가 비틀거리며 민들레 국수집으로 왔습니다. 빨리 식사하라니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 유치부 교실 올라가는 계단에 둘이 앉았습니다.

한참을 주저하시더니 물어봅니다. 

“난 평생을 힘들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예요?” 
“이유가 없어요. 그저 제가 옆에 있으니까요. 도울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요.” 
“이유가 뭐예요?” 
용진씨가 다시 심각하게 물어봅니다.
“음, 용진씨를 건강하게 만든 다음에 고깃배에 팔아먹으려고요.” 
용진 씨가 씩 웃습니다.
“이제 가겠습니다.” 
“아니, 어딜가려구요?”
“이제 집에 가서 자야지요.”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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