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손님들을 위한 민들레진료소 이야기
상태바
노숙인 손님들을 위한 민들레진료소 이야기
  • 서영남
  • 승인 2022.04.18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에서 손님들을 대접하면서 마음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손님들이 성한 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기에 걸려도 약도 쓸 생각조차 못 하고 그냥 낫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허리가 아파도 파스 한 장 얻을 수 없습니다. 노숙을 하게 되면 가정 먼저 치아가 상합니다. 치통이 심해서 밥도 못 먹으면 진통제 몇 알 챙겨줄 뿐이었습니다. 치아가 하나도 없는데도 우물우물 그냥 삼키면서 삽니다. 의사에게 진찰 한 번 받아보면 원이 없겠다 합니다.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010년 7월 14일 이었습니다. 인하대 병원의 교수님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조순구 교수님이십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의료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치료가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거의 없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수단으로 자주 의료봉사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를 봤다고 합니다. 토요일마다 민들레국수집에 의료팀을 꾸려서 오실 수 있다고 합니다. 진료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민들레희망센터를 보여 드렸습니다. 8월 말부터 격주로 매달 두 번씩 토요일에 진료소를 열기로 했습니다.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진료소 이름은 “민들레진료소”로 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2010년 8월 21일(토)에 첫 번째 민들레 진료소가 열렸습니다. 인하대 병원 조순구 교수님과 이진우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 약사 선생님을 포함한 의료팀 여섯 분과 베로니카께서 민들레 식구인 재찬 씨와 동주 씨가 손님들을 맞이하고 진료하고 처방된 약을 나누어드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손님들 48명을 진료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의사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게 진료를 해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큰 감동을 했습니다. 

8월 27일는 조순구 교수님과 함께 인천 중구 보건소에 무료진료소 개설 신고서를 접수했습니다. 민들레 진료소에서 봉사하는 의사 선생님만 여섯 분이나 됩니다. 중형 병원 급의 민들레 진료소입니다. 정말 꿈같은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민들레 진료소를 찾아오는 분들께 필요한 약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 재단에서 필요한 약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다만 우리 손님들이 원하는 파스는 민들레국수집에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9월 18일(토)에는 드디어 민들레진료소가 세 번째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참 소박합니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이라고는 파스 한 장이면 족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손님들에게 닷새치 정도의 처방약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충분히 드리지 못해 미안해합니다. 손님들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처방약을 받아가면서 기뻐합니다.

손님 한 분이 거의 걷지를 못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료를 받아봐야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걷지 못하는 손님은 대략 육십 평생에 한 번도 병원을 가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주민등록증도 없습니다. 경찰서에 가서야 지문조회로 말소된 거주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인숙 방을 얻어 그곳으로 주민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목발에 의지해서 겨우 인천 의료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9센티미터가 넘는 종양이 두 개나 발견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위암 판정도 받았습니다. 긴급의료지원으로도 턱없이 모자라는 비용을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두 가지 수술을 했습니다. 석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무료진료소를 찾아오는 분들은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 한 번 약을 드리면 계속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십니다. 2020년 2월초부터 코로나 19 때문에 민들레 진료소는 잠시 중단했습니다. 아픈 손님들은 모시고 병원으로 진료를 갑니다. 그리고 마스크와 손세정제, 파스, 진통제, 연고 등은 민들레국수집에서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 드리면서 코로나19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