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성녀 프란체스, 가족과 함께 고난 속에서 헌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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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성녀 프란체스, 가족과 함께 고난 속에서 헌신하는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4.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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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그리고 참여에의 초대-로마 성녀 프란체스 2

1404년 프란체스의 두 번째 아들, 에반젤리스타가 태어났고, 3년 후 딸 아그네스가 태어났다. 그러나 1408년, 시민전쟁이 로마에서 일어났다. 분쟁은 교황권을 둘러싼 갈등에서 터져 나왔다. 반교황파를 지지했던 무자비한 장군 라디스라우스는 잔인한 총독, 트로야백작을 보내어 로마를 정복하려고 했다.

교황의 성실한 지지자들은 트로야에게 반기를 들었고 로마는 전투지가 되었다. 프란체스의 남편 로렌조는 싸움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았으나 수많은 전투 중 한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군인들이 그를 프란체스에게 데려왔고 프란체스는 그를 살리기 위하여 간호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프란체스와 가족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교황 지지자들을 엄청나게 파괴시킨 후, 트로야는 그 지도자들을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로렌조의 동생인 팔루쪼를 체포하고 로렌조도 수배하였다. 그러나 로렌조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으므로, 트로야는 대신 아들 바티스타를 인질로 요구했다. 트로야는 바티스타를 붙잡고 있는 한 폰지아노스 집안이 전투에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프란체스는 경악했다. 그는 바티스타의 손을 붙잡고 돔 안토니오에게 도망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놀랍게도, 그 수도승은 트로야의 요구에 응하라고 조언했다. 하느님께서 소년을 돌봐주실 것이니 프란체스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프란체스는 아들을 데리고 트로야가 군대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시청 언덕으로 걸어갔다. 그는 아들을 그들에게 넘기고 즉각 가장 가까운 교회로 가서 동정 성모상 앞에 엎드렸다.

프란체스가 떠나자 곧, 트로야는 군인들에게 명령하여 바티스타를 말에 태우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장교가 바티스타와 함께 말에 올라탔을 때, 말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말을 바꾸었으나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은 말을 채찍으로 때리고, 달래고, 밀기도 했지만 말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군인들은 이것을 거룩한 징표하고 여기며 소년을 돌려보냈다. 프란체스는 그때까지도 기도하며 엎드려 있다가 바티스타의 팔이 그를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잠깐 동안의 이런 은총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문제들이 앞에 있었다. 로렌조가 회복된 후, 가족은 그가 체포되는 것을 우려해서 로마로 보냈다. 그래서 폰지아노 장원은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불한당들이 저택에 들어와 부착물을 떼어내고 보이는 것들을 다 부셨다. 그들은 하인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그리고 아들 바티스타를 인질로 끌고가 나폴리로 데려갔다. 프란체스가 수 주간 동안 부서진 집안을 정리하고 나니 흑사병(페스트)이 로마를 강타하였고, 그의 9살난 아들 에반젤리스타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1년 후 아그네스의 생명도 앗아갔다.

우리는 욥의 경우와 같은 비극을 겪은 프란체스가 절망한다 해도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남편은 떠났고, 아들과 딸이 죽었으며, 하나 남은 아들은 인질로 끌려갔고, 집은 파괴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절망하는 대신, 이러한 시련은 프란체스로 하여금 고통을 겪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그는 삶에서 거품을 다 정리하기로 결정했고 저택의 일부를 임시병원과 노숙인들의 피난처로 만들었다. 동서인 바노짜와 협력하여 집안에 남아있는 음식과 포도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심지어 멋진 보석과 옷을 팔아서 그 돈을 사람들에게 주기도 했다.

1414년 마침내, 정치적 긴장상태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 교황권을 주장하던 측들이 포기하고 -콘스탄체 공의회가 마르틴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면서 기본적으로 분열은 끝나게 되었다. 로렌조는 집으로 돌아왔고- 구출된 바티스타도 함께 왔다. 그리고 프란체스는 모든 에너지를 가족에게 돌렸다.

사회적 삶의 최초 세포

“가족은 사회적 삶에 최초의 세포다. 가족은 자연적인 사회로서 그 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사랑으로 그리고 생명의 선물을 통하여 그들 자신을 서로에게 주도록 초대되었다.

가족안의 권위, 안정, 그리고 관계의 삶은 사회 안에 자유, 안전, 그리고 형제애의 기반을 구성한다. 가족은 공동체로서, 어렸을 때부터 그곳에서 우리는 도덕 가치들을 배울 수 있으며, 하느님을 경배하기 시작하고 자유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 가족생활은 사회생활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

-가톨릭교회의 교리 2207항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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