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친 유리창의 가치관을 퇴출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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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친 유리창의 가치관을 퇴출시키자
  • 이원영
  • 승인 2022.04.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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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출근길에 만난 쓰레기 화분

개천을 따라 운동을 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메마른 나무마다 물이 올라와 연두 애기 잎과 벚꽃, 개나리와 같은 봄꽃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게 하는 봄기운 덕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활기차고 즐겁다.

하천길이 끝나면 차도를 만나게 된다. 인도를 따라 설치된 화분에는 봄을 담은 식물을 볼 수 없다. 식물은 고사하고 담배꽁초, 플라스틱병 등으로 어지럽다. 처음부터 화분이 쓰레기로 덮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이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준 결과다.

깨진 유리창 이론

어지럽혀진 인도의 화분을 보면서 ‘깨진 유리창’이란 이론이 생각났다. 깨진 유리창 이론( - 琉璃窓 理論, 영어: broken windows theory)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영어: Fixing Broken Windows: you suck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그대로 두면, 엔트로피 법칙처럼 깨진 쪽을 중심으로 무질서와 혼란,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한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석진 골목에 2대의 차량 모두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시켜두고, 차량 한 대에만 앞 유리창을 깨져있도록 차이를 두고 일주일을 관찰한 결과, 본넷만 열어둔 멀쩡한 차량은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지 말라.

어지럽힌 화분이 도열한 인도를 지나 도심의 광장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과 달리 무척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다. 매일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공공근로 어르신들 덕이 있다. 몇 주 전부터 시에서도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있다. 또 곳곳에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어 쓰레기투기를 막는 구조도 마련되어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틈으로 무질서가 확대되지만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고 교체하면 무질서를 막을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이론을 응용해서 사회 정책에 반영한 사례로는, 1980년대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이 대표 사례도 있다. 당시 여행객들에게 뉴욕의 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하철의 치안 상태가 형편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하철 내의 낙서를 모두 지우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실천하여 실제로 지하철에서의 사건사고가 급감하였다고 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지 않은 결과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관련된 소식이 언론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온 것일까?

2001년 1월 경기 오이도역, 2002년 서울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이도역 사망 사고는 6개월이 채 안 된 수직형 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면서 일어났고, 발산역 사망 사고는 리프트의 기계 결함이 원인이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부르며 개선을 요구하며 장애인 이동 투쟁을 벌였다. 결국 서울시는 ‘장애인이동권보장 종합대책’을 통해 2004년까지 모든 서울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리프트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7년 서울 신길역에서 장애인 승객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장연은 당시에도 ‘지하철 연착 투쟁’을 진행한 바 있다. 지속적인 시위와 요구에도 약속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전장연은 지난해 12월6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깨진 가치관은 무질서를 부른다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국민으로 이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투쟁이 과하다는 주장과 이를 받아 정당의 대표는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하여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어 물의를 일으켰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구태적 발상으로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소수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가치관은 깨진 유리창과 같은 가치관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깨진 가치관은 모두의 생명을 위협할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범죄는 covid-19로 인해 노골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사실 트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강력한 미국을 만들고 경기를 부양이란 명목으로 자국에 들어온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유색인종, 특별히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불거졌고 covid-19 확산 후 심화되었다. 깨진 가치관이 부른 무질서의 결과다.

깨진 유리창의 가치관을 퇴출시키자

우리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갈라치기하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폭력과 반목이 난무하게 된다. 일제의 잔재 속에 피어난 반공이념은 어제의 이웃을 주저없이 죽였고, 밀실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란 말이 허리 잘린 한반도를 좌우로 나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남(男)과 여(女)를 가르고 혐오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차별하고 갈라치는 일로 깨진 세상을 치유할 방법이 있다. 먼저,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작동시키는 일이다.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의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이나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법률은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째는 차별을 언급하는 그들을 퇴출시키는 것이다. 민중을 선동하며 아리안의 우월성을 소리치던 독일의 제3제국을 기억하자. 독일이 히틀러의 거짓과 술수의 혓바닥을 허락했을 때 유태인 학살이란 국가적 범죄를 저지르고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차별적 언어를 허용해서도 안되고 차별적 표현을 거침없이 말하는 이들의 입을 즉시 틀어막아야 사회적 무질서와 분열을 막을 수 있다.

노골적으로 차별을 말하는 정치인과 정당은 전쟁과 살인을 정당화한 제3제국의 유령에 접신한 이들이다. 불행한 과거가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깨진 유리창의 가치관을 조금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깨어있는 시민이 해야 할 의무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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