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클레버, 노예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들어올리는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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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클레버, 노예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들어올리는 세례
  • 브랜든 보트
  • 승인 2022.03.20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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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성 피터 클레버 4

피터의 예수회 동료들까지 포함하여 지역의 많은 성직자들은, 그들이 아프리카 말을 할 수 없으므로 노예들을 돕는 일에서 제외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피터는 이런 구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앙골라 말을 배웠다. 많은 노예들이 그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언어를 알아듣기 위하여 통역자들의 팀을 고용하였다.

알폰소의 조언에 따라, 그는 또한 노예들에게 신앙에 관한 기본 가르침이 있는 큰 그림을 보여주었다. 피터의 주 목표는 노예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존엄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그들의 자기-존중을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는 노예들에게 그들이 사랑받는 존재들이며, 이것은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어려운 전투였다. 언어 장벽 이외에도, 노예들은 피터의 애덕 행위를 왜곡하고 의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피터는 그들의 저항을 극복하였다. 피터는 사목하는 동안 3십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교회 역사상 다른 어떤 성인보다 많은 세례자수였다(비록 다른 통계자료도 있었지만, 아마도 그의 동료 예수회원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이 숫자를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언어 문제를 넘어서기 위하여. 피터는 10명씩 그룹을 만들어 세례를 주기로 했는데, 모두 같은 세례명을 주어 그들이 자기 세례명을 쉽사리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세례성사는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였다. 그렇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도 세례는 중요했다. 먼저, 세례는 각 노예 하나하나를 하느님의 자녀로 각인하였다. 세례는 노예들에게 그들이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노예들은 단순히 교환하는 물건이나 노동력을 값싸게 구매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노예들은 하느님의 소중한 아들딸들로서, 깊은 사랑을 받고 거룩한 존엄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세례는 또한 공적인 선언을 하였다. 세례는 노예들을 그들의 주인들과 동격으로 들어올린다. 어떤 지역 사람들은 그들이 거의 영혼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피조물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성사를 “모독한다”고 피터를 비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노예를 교회 안에 들여놓아 교회의 신성을 더럽힌다고 불평했다.

피터는 성 바오로 서간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며 응답하였다, “한 분의 주님, 하나의 믿음(그리고) 하나의 세례”(에페 4,5). 그는 노예들에게 그들의 소유주와 주인들이 사용하는 똑같은 물로, 똑같은 형식으로, 그리고 똑같은 교회 안에서 세례를 주었다. 그럼으로써 흑인이나 백인이든, 부자이건 가난한 이건, 노예든 자유인이든, 모두가 그리스도의 똑같은 지체의 구성원들로서 세례 물로부터 떠올랐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각인되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존재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엄성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요한 바오로 2세

<출처> [성인들과 사회정의>, 브랜든 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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