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곱빼기로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상태바
짜장면 곱빼기로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 서영남
  • 승인 2022.02.20 2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일두 씨는 50대 초반입니다. 신포동 어느 빈집에서 지냅니다. 십 몇 년 전에 강원도에서 인천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막노동을 했습니다. 여관에 장기방을 얻어서 살았습니다. 월 삼십만 원만 내면 다른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동료들과 어울려서 술도 마시면서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게 되었고, 몸도 약해졌습니다. 덩달아 막노동 일거리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여관비를 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겨울이나 장마철에 돈이 떨어지면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3년 전 겨울에 넉 달이나 방세를 내지 못해 여관에서 나왔습니다. 며칠을 동인천역 광장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진짜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여관으로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노숙을 했습니다.

지난여름부터는 빈집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일두 씨가 도시락 꾸러미를 받아가면서 아주 어렵게 말을 합니다. 만 원만 빌려달라고 합니다. 막노동을 하려고 이틀이나 인력사무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에는 일하러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전에는 인력사무실에서 마련한 승합차를 타고 함께 갔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승합차 운영을 하지 않는답니다.

요즘은 각자가 직접 현장으로 가야한답니다. 오늘 일을 하면 내일이라도 갚겠다 합니다. 이만 육천 원을 빌려드렸습니다. 돈이 너무 많다고 만 원만 달라고 합니다. 비상금도 있어야하니까 그냥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자 없이 한 달 안으로 갚으면 되고 혹시 못 갚아도 밥은 먹으러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코로나 19 때문에 손님들에게 도시락꾸러미를 나눕니다. 밥과 반찬을 많이 담을 수 있는 5칸 돈까스 도시락을 씁니다. 그리고 국을 담고, 도시락 김 하나, 컵라면 하나, 생수 한 병, 일회용 마스크 하나, 과일 또는 빵 그리고 과자나 사탕을 비닐봉지에 넣어 드립니다. 오전 11시에 1차 도시락꾸러미를 나눕니다. 

손님들이 도시락을 받으려 모이면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골목길에 흩어져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앞에 조그만 천막에는 어묵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어묵을 무제한으로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믹스를 자유롭게 드실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핫팩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도시락을 나누기 직전에 떡 또는 고구마나 감자를 나누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오전 11시 도시락 나눌 때 가져갑니다. 혹시 늦게 오는 분들을 위해서는 오후 1시에 또 도시락꾸러미를 준비해 드립니다. 도시락이 모자라서 오후 1시에 다시 와서 가져가기도 하지만 아주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한두 시간을 더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러면 그 손님을 모시고 민들레국수집 근처의 식당에 모시고 가서 설렁탕이나 순댓국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그제는 두 분의 손님이 어제도 굶었고 오늘도 지금껏 아무 것도 못 먹었다고 말합니다. 식당으로 모시고 갈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배달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짜장면을 드시겠어요? 한 분은 곱빼기로, 한 분은 보통이랍니다. 짜장면 보통이라는 분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왜 보통을 드시려고 하지요? 곱빼기가 더 비쌀 것 같아서 그렇답니다. 그럼 곱빼기 드실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짜장면 곱빼기로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참 맛있게 먹습니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고 몇 번이나 인사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후 1시에 두 번째 도시락을 나눠드린 후에는 오후 5시 문 닫을 때까지 한가한 시간입니다. 그때였습니다. 아마 4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처음 보는 손님입니다. 라면 두 개와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면서 배가 너무 고픈데 천원만 받고 라면을 끓여줄 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냥 끓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라면 두 개를 넣고 달걀 하나 넣고 끓였습니다. 김치도 내고 밥도 한 공기 담아서 상을 차려줬습니다. 참 맛있게 먹습니다. 

가져온 라면 두 개와 컵라면 몇 개를 배낭에 챙겨주었습니다. 여기는 목요일과 금요일은 문을 열지 않고 토일월화수 닷새 동안 문을 연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오전 11시에 도시락꾸러미를 나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