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있는 자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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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 있는 자는 어디에?
  • 이원영
  • 승인 2022.02.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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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요즘 일을 하면서 주중에 아랫집 식구와 만남이 뜸하다. 아랫집 식구는 새벽 6시에 나가서 오후 5시 쯤에 귀가한다. 가락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셔서 빠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나는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니 마주치기 어렵다. 그래도 주말이면 함께 식사를 하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설날을 앞두고 많이 바빴다. 주말도 없이 출근을 했고 올해부터 시작한 드럼학원에도 가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다시 드럼을 치기 시작했는데 몇 주 쉬었다고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정한 빠르기로 박자를 쪼개는 연습을 하려고 메트로놈이란 기계를 사용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시계추처럼 똑딱이는 소리를 맞춰 드럼을 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메트로놈 소리에 집중하면 드럼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드럼에 집중하면 메트로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똑딱이는 메트로놈 소리와 내가 치는 드럼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어야 박자에 맞게 드럼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메트로놈 소리도 내가 치는 드럼소리도 다 들린다. 하지만 두 소리를 맞출 수 있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성서의 말처럼 듣기는 들어도 들을 귀가 없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내게도 위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울 때 일이다. 바이올린이란 악기는 조율하는 것도 어렵고 기타처럼 플랫이란 막대가 지판에 없어 음정을 잡기도 어렵다. 오로지 귀로 듣고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여야 제대로 된 음정을 잡을 수 있다.

언젠가 바이올린을 하면서 선생님이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천천히 악보에 따라 한 음정씩 소리를 내면 선생님은 음정이 낮다, 높다면서 소리를 조정해 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 미세한 차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들을 귀가 없었던 것이다.

미세한 음정을 듣기 위해서 튜너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현악기의 음을 조율하기 위해 사용하는 튜너를 켜두고 손가락으로 음을 짚은 뒤 미세한 음정의 높낮이를 듣고 찾아가는 훈련이다.

도레미와 같은 음을 짚고 활을 켜서 소리를 내면 튜너는 도(C)란 글자와 함께 좌우로 화살표가 켜진다. 정확한 음정을 잡아 소리를 내면 좌우 화살표의 불이 들어오지 않고 정중앙에 불이 들어온다. 이 훈련은 예민한 작업 작업이다. 조금만 손가락을 움직여도 음정이 내려가거나 올라가기 때문이다.

무척 지루한 훈련을 오랫동안 반복했다. 천천히 한음, 한음을 소리내고 튜너의 바늘에 따라 미세한 움직임으로 지판을 오르내리며 정확한 음정을 찾아갔다. 그 결과 나는 음정의 높낮이를 듣는 귀를 얻게 되었다.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음치라고 한다. 사실 음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음치와 박치다. 음치는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고 박치는 정확한 박자에 따라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음치에서 벗어나려면 자기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음치클리닉을 받는다.

악기 연주는 혼자서 하는 독주 외에 함께 하는 합주가 있다. 합주는 다른 악기와 어울려 소리를 내야 한다. 합주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빠르기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있고 실내악은 음악을 지휘하는 리더가 있다. 합주 역시 박자와 음정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들을 귀는 음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독주만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합주를 하는 존재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소리만 내면 안된다. 다른 사람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사는 관계에서 합주를 하려면 음악의 악보처럼 법이란 악보와 그 시대의 문화(윤리, 정서)라는 박자에 따라 소리를 내야 한다. 자기 소리에만 집중하고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들을 귀가 필요하다.

논어는 이런 구절로 끝을 맺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없으며,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천명을 알려면 잘 들어야 하고 예를 알려면 하늘과 땅의 리듬을 알아야 하고 말하는 법을 알려면 타인과 자신 속에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소리만 내고 자기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는 이들이 정치에 나아가니 세상이 시끄럽기만 하고 함께 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천명과 예를 알고 말하는 법을 알아 조화로운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들을 귀 있는 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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