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정 바람으로 산비탈 풀꽃으로-현순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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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정 바람으로 산비탈 풀꽃으로-현순희를 보내며
  • 장진희
  • 승인 2022.02.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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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 따라 환히 가소서

-장진희

 

현순희를 보내며
장가 못 간 노총각이 어느 날
설레임을 어쩌지 못하고
입이 귀에 걸려 달려왔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자를 만났다고

따듯한 남쪽 큰섬
돌 많고 바람 많은 서귀포 아가씨가
큰산 아래 높은 곳
정신이 번쩍 나는
겨울 바람 매서운
산골로 시집을 왔다

돈 아래 짓밟히는 세상
두어라 말아라
산이 내주는 대로
땅이 내주는 대로
거두어 먹고 살리라
야무진 꿈 하나 품고
산골로 들어온 신랑 따라
그 꿈 함께 나누던
이웃들과 함께
겨울해 짧은 산 옆구리에
아들 둘 낳고
작은집 지었다

그 시절 남자들 대체로 철이 없어
큰아들이라 여기고
아들 셋 에미 되어|
산 아래 큰나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비긋이 보살 같은 미소가 대답이었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지
아이가 아프면 에미는 가슴으로 아프지
골수로 아프지
큰아들 아픔은 이승의 숙제려니
아들 둘은 선물 같은 힘이려니

아들 셋 살려놓고
나는 그대요|
그대는 나인걸
먼 데 아픈 사람들 안 잊히어
마음 나누어 챙기고

내 몸은 잊혀도 좋으리
꺼져갈 듯 꺼져갈 듯
아직 어린 빚은 어이 갚을까
살아야지 살아야지
큰아들 철 들고
두 아들 짱짱해지도록
걸어야지 걸어야지

아들들은 이제 안다
이승의
꿈 같은 인연
이제 몸은
가벼워질까
흩어질까

사랑 사랑 사랑
차마 다 거두지 못한 혼
광대정 바람으로
산비탈 풀꽃으로
작은집 온기로
그대 곁에 남으리니

아픔도 버리고
그 고운 사랑 거두어 안고
가리라
밝은 빛 따라
환하게 돌아가리라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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