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렇게 손을 흔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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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손을 흔들어 본다
  • 이슬
  • 승인 2022.02.07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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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만 해도 어른들 속에서 '아이고 애기가 왔구나' 하고 잘 해도 못 해도 궁둥이 툭툭 두들김 받으며 일했었는데, 이제 완전히 세계가 바뀌었다. 지금은 친척 조카들 나이 정도의 젊은 친구들 속에서 눈치를 보며 카페 일을 배우고 있다.

갓난아기도 스승이 되지 않은가, 그 시간을 지나온 세대로써 마음을 다해 젊음을 그대로 존중하고 먼저 일 한 선배님으로 잘 모시려 한다면 마음은 다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현실은 다시 어디 궁둥이를 붙이기만 해도 꼬꾸라져서 자버리는게 현실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사회 초년생으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어른들은 다 때가 있다는 말을 괜히 지어 놔서는,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고 싶어 나서면 어지간히 좀 하라며 기운을 쏙 빼놓는다. 

일을 하고 싶은데도 설 자리가 없다던 어른들의 마음을 비슷하게나마 알 수 있으려나. 더 도와주려다가 미리 해놓지 말라고 지적 받고, 지시 내릴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왜 안 하느냐고 지적 받는다. 빠르게 하면 너무 급하게 하지 말라고 지적 받고, 주춤거리면 일을 좀 빨리 익혀 주셔야 한다고 지적 받는다. 열심히 외워서 잘 하려고 했다가는 제발 물어 보시고 하라고 다시 지적 받는다.

너무 고단하다. 일이 처음이고 서툴러서 실수가 많지만 못할 거라는 짐작과 선입견이 지적하는 이도 지적 받는 이도 더 고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젊으면 더 잘 할 수 있는 건가 자꾸만 의문이 든다. 가끔 바로 앞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오거나 화난 듯 한 무뚝뚝한 음성이 들리면 화들짝 놀라서는 '아 답답한가 보구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는 바로 주눅이 들어 한 발짝 물러 서 있다. 그러면 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처음 가졌던 존중심과 사랑, 모시는 마음 뭐 그 따위 것들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이눔시끼 떽. 한숨 쉬지 말고 다그치지 말고 좀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되나. 내가 니 나이에 애를 낳았...' 앗 아서라 제발. 이대로 꼰대가 먼저 되어서는 안 되겠지.

컵이 잘 씻겨 있지 않아서, 쓰레기가 제 자리에 놓여 있지 않아서, 유리 보관용기가 깨져 있어서... 누가 했는지 알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실수들은 모두 새로 들어 온 사람에게로 향하는 법이다. 몇 번 조심하겠다고 말하다가도 한 번씩 우르르 설움이 밀려들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말하다가 순간 아차 싶었다. 이 나이에 일러바치는 꼴이라니. 내가 한 게 아니라고 하면 젊은 친구들이 한 게 되고, 그렇다고 계속 지적을 받으려니 기운이 딸리고 억울하다.

어떤 날은 나를 가르쳐 준 젊은 친구까지 잘못 가르쳤다는 이유로 함께 혼나기도 하는데, 그런 날이면 온종일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니라고, 오롯이 제 잘못이라고 손사래까지 치면서 말하지만 이미 어색해진 분위기는 아무리 적응하려해도 힘들다. 젊은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벌써 기분이 상했다면 조금이라도 풀어지기를 바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다시 마음을 건넨다.

혹시 나이 많고 어설픈 아줌마 때문에 불편하고 기분 나빠지면 그냥 그만 두고 나간다고 할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 한다. 나이에 책임이 있다더니, 아 그것이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갑자기 너무 고단해진다. 육체노동과 감정 노동을 저울질해 본다면, 감정노동이 배로 무거운 것 같다. 마음이 무거우면 몸은 몇 배로 더 무거워 지는 것 같았다. 마스크로 반은 가려진 얼굴인데도 무슨 표정을 읽겠다고 사람들의 작은 눈썹 떨림이나 숨소리의 강약에도 의미를 가지니, 아 이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고 내 안의 문제일 수 있겠구나, 생각 한다.

 

그림=이슬
그림=이슬

일터 주차장 바로 위에 무덤 하나가 있다. 여느 시골 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덤 풍경인지라 사실 처음에는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거의 매일 아침을 마주하게 되고 바로 그 앞에 차를 세우게 되면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쩐지 어색하다. 소문에 이 무덤은 어느 부잣집 가문의 조상님 무덤이라는데 그 가문을 잇던 노름꾼 아들 하나가 노름빚을 갚느라 이 일대의 넓은 땅덩이들을 야금야금 하나씩 팔아버려 지금은 무덤 하나 있을 자리만 남아있다고 했다. 사연을 들으니 더 쓸쓸해 보인다.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지만,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손자의 눈에 비추어진 할아버지의 모습인데,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던 할아버지가 몰래 창문 너머 저 멀리 어딘가로 살포시 손을 흔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저 멀리에 있는 것은 할머니의 무덤이었다. 할머니의 무덤 곁을 지나가면서 할아버지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셨던 것이다. 가끔 그 장면을 그려 보면 내가 그 이야기 속의 손자가 된 듯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할아버지에게 이 무덤은 단순히 그냥 흙덩이가 아닐 것이다.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놓여있는 쓸쓸한 이 무덤도 누군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니 매일 마주하는 무덤이 정겨워진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는 그냥 다니기가 멋쩍어 도착하고 떠나면서 '안녕하세요' '또 내일 올께요' 인사 한 마디씩 건넨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마디 두 마디 건네던 것이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듯 자꾸만 말이 많아진다.

할매는 어쩐지 잔소리를 많이 하실 것 같아 이래도 저래도 허허 하실 것 같은 할배를 떠올리고는 '아이고 할배요. 오늘은 참말로 힘들었네요.' 하면 조금은 다시 정신이 차려지는 듯 했다. '할배요 오늘은 또 무슨 일들이 있을라나요. 제발 조용히 잘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하면 또 힘이 생기는 듯도 하다. 무덤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없는데, 내 생각만이 이렇게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랬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만히 각자의 몫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내 불안과 소심함이 나를 심하게 움직이고 서운하다는 잘 하고 싶다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휘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고 할배요.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할배는 심심하지도 않겠네.'
'할배요. 설인데 맛있는 것도 많이 잡수시고 새끼들 다 잘 지내고 잘 왔다 갔데요?'

어쩌면 내가 일하는 모습과 나의 태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저 말 없는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날도 있다. 그 이야기 속에 할아버지처럼 나도 고요한 무덤에 괜스레 손을 흔들어 본다.

 

이슬 비아
세상에 온 의미를 찾아가는 촌스러운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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