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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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 이원영
  • 승인 2022.02.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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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1월부터 의00자연000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이란 직책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통해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자연에너지 확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내가 출근하는 사무실은 경기000환경운동연합과 같이 사용한다.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출근한 첫 주 어느 날 점심을 샐러드 식당으로 갔다. 코로나로 인해 일회용 종이컵이 나왔다. 물을 마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잔에 물을 따랐는데 환경운동연합의 사무국장이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재사용이 불가능한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유다. 다회용컵을 준비하지 않아서 물을 마시지 않았다. 환경을 위한 실천이 철저하다 못해 절실했다.

상황에 따라, 혹은 상대를 배려하는 의미에서 유연하게 대처한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환경을 위해 6개월 이상 채식을 하던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고기집에 가기도 하고 권하는 이들이 민망하지 않게 하려고 조금씩 먹기도 했다. 이렇게 유연한 대처는 운동성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고민하던 중에 단호한 실천을 보이는 분을 만나서 반갑고 고맙다.

주중에 환경운동연합에 손님이 오셨다. 양주의 수녀원에서 생활하시는 수녀님인데 지금까지 해온 기후위기를 위한 비상행동보다 더 박차를 가하고 싶다는 의지로 방문하셨다. 특별히 지역에서 연대해서 환경운동에 힘을 모을 방법을 고민하고 계셨다. 기후위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수녀님의 한 마디가 내 귀를 때렸다.

“저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7년 남았습니다.”

맥락없이 나온 말이라 많이 아픈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한부 환자라고 보기 힘들었다. 음성에 힘이 넘쳤고 혈색도 건강해 보였다.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서 수녀님이 말한 ‘시한부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IPCC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양의 증가가 원인이라고 명토 박았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 대기온도를 1.5도까지 제한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가 2022년이다. 2030년까지 7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이 시간 안에 전환적 실천을 보이지 않는다면 IPCC의 예상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녀님은 자신을 7년 시한부 인생이라 말했던 것이다.

 

자기 생이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간이 죽음에 직면할 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감정의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1) 부정(Denial) - 'It's not happening'의 단계

"아니야, 믿을 수 없어,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등의 표현을 한다. 진단을 잘못 내렸다는 생각과 좀더 나은 진단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의사와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니게 되며, 환자는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한다.

2) 분노(Anger) 'Why me?'의 단계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나야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 오는 거야" 마음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단계이다. 자기 자신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자에게 분노를 발산한다.

3) 협상(Bargaining) 'Seeking compromise'의 단계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절대자와 타협하는 단계이다. "고쳐주면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재산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등의 거래를 한다.

4) 우울(Depression) 'Giving up hope'의 단계

협상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고, 해답도 찾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는 체념이다. 만사가 귀찮아 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질 수도 있다.

5) 수용(Acceptance) 'Being at peace'의 단계

억울함이나 분노가 사라지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이때에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삶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은 일상 안에서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자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을 처음부터 수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힘든 일이다.

나는 수용의 단계를 넘어 더 나은 삶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수녀님은 2030년이란 기후위기의 시한부 앞에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성령의 춤사위를 따르는 분이었다.

수녀님의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저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기후위기를 멈추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절제하고 금욕하는 삶을 보며 내 자신을 되돌아 본다. 함께 하는 이들을 더 사랑하며 지구환경을 더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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