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숙인이 지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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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숙인이 지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 서영남
  • 승인 2022.01.23 1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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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돈이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 급히 돈이 필요할 때 돈을 구할 길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저에게 돈 좀 빌려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빌려주었습니다 빌려주었는데 갚지 못하면 밥 먹으러 오질 못 합니다. 그래서 빌려달라면 그냥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예 빌려달라는 소리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손님들에게 무이자로 조금 빌려주는 민들레 금고를 1월 15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종자돈은 제가 베로니카로부터 받는 용돈 50만 원입니다. 종자돈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마운 어느 자매님이 30만원을 보태주셨습니다. 그래서 종자돈 80만 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들이 대상입니다. 무이자로 빌려드립니다. 빌리는 기간은 스스로 정합니다.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한도는 5만 원입니다. 약속 기한 내에 갚으면 소정의 상금도 드립니다. 첫 번째로 5만원을 빌린 손님이 설날 지나서 열흘 후에 갚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여성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을 한다고 합니다. 도시락이 떨어져서 오후 1시에 다시 도시락을 가지러 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짜장면을 시켜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짜장면이 오는 동안 어묵을 드시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침낭이 필요한지 물어봤습니다. 침낭이 있으면 좋지만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답니다. 그저 두껍고 긴 패딩 외투가 있으면 좋겠고, 장갑이 필요하답니다. 마침 어제 온 택배에서 좋은 여성용 패딩 외투와 장갑이 있어서 드렸습니다. 정성껏 성호를 긋고 짜장면을 먹습니다. 깨끗하게 비웠습니다. 참 맛있게 먹었답니다. 세례명이 막달레나라고 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그제 영등포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막달레나 자매님이 오늘 왔습니다. 운동화가 밑창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좋은 운동화로 바꿔드렸습니다. 도시락꾸러미를 드렸습니다. 어묵을 좀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어묵을 먹으면서 어제 받은 패딩 외투가 정말 좋다고 합니다. 새 운동화가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어도 좋은 크기라서 좋다고 합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더니 가방이랍니다. 배낭은 어깨가 아파서 안 되고,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미니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노트북 가방과 끌고 다닐 수 있는 여행용 가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동인천역 근처 가방 가게에 갔습니다. 가면서 나이를 물어봤습니다. 50대라고 합니다. 노숙은 이 년째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길에서 노숙하기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작은 가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밤새 가방을 훔쳐가는 경우도 있답니다. 노숙은 정말 힘든데 방을 구하는 것이 어떨지 물었습니다. 서울은 너무 비싸서 꿈도 꿀 수 없고, 여관이나 고시원은 무섭답니다. 그래서 길에서 노숙합니다. 가방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샀습니다. 전철을 타려는데 막달레나자매님이 돈이 한 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갑을 털어서 겨우 육만 원 드렸습니다. 막달레나 자매님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성 노숙인이 지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2022년 2월 1일(화)은 설날입니다. 황금연휴! 노숙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슬픈 날들입니다. 돈이 있어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날입니다. 민들레국수집도 설날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설날에는 문을 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민들레 식구들이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설날에도 문을 열자! 설날에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드립시다. 명절 음식으로 전을 부쳐서 작은 도시락에 담아 손님들이 설날 기분을 느끼게 해 주자고 합니다.

노숙하면서 제일 서러운 날이 명절이랍니다. 이번에는 꼭 떡국도 해서 일회용 국그릇에 담아서 드리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본래 노숙을 하면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떡국인데 코로나 때문에 우리 손님들이 지난 이 년 동안 국물 구경조차 못 합니다. 그래서 떡국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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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2022-01-27 16:25:35
저를 비롯한 모든이들이 대표님과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