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신협은 어디로?" -마리 가브리엘라 수녀님과 장대익 신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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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신협은 어디로?" -마리 가브리엘라 수녀님과 장대익 신부를 생각한다:
  • 조세종
  • 승인 2016.08.02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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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가브리엘라 수녀님과 장대익 신부 동상. (사진=조세종)

[조세종 칼럼] 

지금은 길을 가다가도 웬만한 도시의 거리에서 '신협'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새 신용협동조합은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70년대 후반 어렸을 때 다니던 성당(인천교구 소사성당)만해도 성당 안에는 신협이 있었고, 성당 총회장님은 신협의 이사장님을 겸임하고 계셨습니다. 그만큼 신자들 사이에서 신협은 성당생활과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성당 안에서 신협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신용협동조합은 미국인 메리 가별(가브리엘라) 수녀님에 의해 1959년에 부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녀님은 1930년에 메리놀 수녀회 소속으로 평양교구에 부임하신 뒤 한국전쟁 동안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전쟁미망인을 위한 구호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피난민들이 살던 부산에서 ‘달러이자’라고 불리는 고율의 이자에 시달리던 이들을 위해 신협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피난민들에게 은행은 넘기 힘든 문턱이었고 7부 이자, 즉 한달 이자가 7%, 1년이면 이자가 원금에 가까운 고리대금이 피난민들을 이중삼중으로 착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님은 신협 설립을 위해 캐나다로 건너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학 부설 협동연구원에서 협동조합운동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1960년 처음으로 메리놀병원, 성분도병원, 가톨릭구제회 직원들, 부산 중앙본당 신자들 모두 27명과 함께 성가신용협동조합을 국내 최초로 설립합니다.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 한국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신협을 만든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수녀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는 장대익 루도비꼬 신부님이 두 번째로 가톨릭중앙신협을 설립하였습니다. 두 분은 당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민간차원의 신협운동이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독재로 말미암아 정부의 관리 통제 아래에 들어갔으며 이에 저항하는 신협을 국가가 해산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협동조합 운동의 질곡 같은 시간들이었고 우리의 경제성장이 그렇듯 몸은 비대하나 영혼은 없는 좀비와 다를 바 없는 행태가 계속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1980년대 대형 금융비리 사건들, 1990년대 IMF아래 수많은 신협들이 문을 닫고 살아남는 신협들은 공적자금에 의한 제2 금융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1997년 논골신협 인가 이후로 지금까지 정부는 한 곳도 지역신협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64년 신협연합회 창립 기념사진

내가 살고 있는 대전에는 신협중앙연수원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신협 중앙회 현관에 들어서면 마리 가브리엘라 수녀님과 장대익 신부님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매년 신용협동조합에서는 신협 선구자 추모식을 거행하여 두 분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두 분의 수도자, 성직자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이 종교기관이 아니라 신협에서 신협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되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첫째, 가톨릭교회는 이분들의 정신과 유산을 어떻게 기리고 보전하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협동조합의 선구자들을 어떻게 신자들에게 알리고 그분들의 사랑이 협동조합의 정신과 활동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고 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지금 신협의 관계자들이 진정으로 이분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추모식으로 그칠 것이 아닙니다. 제3세계 민중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협동조합 운동에 평생을 바친 분들이 세우신 협동조합에 합당한 지금의 신용협동조합이 되도록 안으로 자발성, 민주성, 독자성을 지키고 관료화를 막으며 밖으로 정부의 부당한 간섭과 길들임을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밥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아직도 고리대금의 악성부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리대금의 마수에 빠져 대부업체보다 자신을 원망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산 50조, 조합원 수 600만 명의 신협을 가진 나라에서 그 선구자들의 노고를 참으로 무색케 만듭니다.

척박한 우리들의 삶을 다시 건강하게 살리기 위해 신협운동에 앞장섰던 선구자들의 마음을 다시 새겨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기리고 있습니까? 그분들을 제대로 기리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조세종 디오니시오
소셜경영연구소 소장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대전교구 카리타스 한끼백원나눔운동본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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