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사랑 안에 계신 그 한 사람 만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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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사랑 안에 계신 그 한 사람 만나자는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2.01.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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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딱 이십년 전에 우리 식구는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귀농을 하자면서, 그저 시골이 아니라 산골만 찾아다닌 것을 보면, 아마 귀농(歸農)이 아니라 귀산(歸山)을 하려던 것 같습니다. 경북 예천에 한 달간 들어갈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호미 하나 들고 온종일 비탈밭을 떠나지 않았던 할머니가 있었지요. 자식들은 그만 농사 접고 도시로 나오시라고 권했다지만, 할머니는 수인처럼 그 산골마을을 떠날 수 없었답니다. 짐작컨대 호미를 놓는 순간이 저승길이겠지 생각했습니다.

이따금 언덕에 새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그분의 모습을 볼 때면, 그 속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밭고랑만큼 깊이 패인 주름처럼, 그분에게 삶이란 그저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을 테지요. 손톱에 배인 흙처럼 어둠이 일상이 되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웠을 겁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목적이 있을 리 없는 삶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목적을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을 쓴 닉 워렌은 “우리는 하느님의 목적에 의해서, 하느님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참 폭력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화가 났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노예가 아닙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동무가 필요해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편안하게 말을 섞을만한 우정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동무들이 노예처럼 사는 게 안타까워서 모세를 보내고, 이윽고 친구를 만나러 살갑게 지상에 오신 분이 그분이겠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고 하신 말씀을 납득하는 신앙이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친구를 만나는 데 굳이 목적과 이해관계를 따져 물을 필요는 없는 거지요. “너를 보고 싶었다”는 말로 충분합니다.

김상용이란 시인이 있습니다. ‘南으로 窓을 내겠소’라는 시로 유명하지요. 그이는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춘천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되어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가고, 여기를 졸업하고서 일본으로 유학하여 릿쿄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귀국해서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동아일보>에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벨 리’를 비롯하여 찰스 램, 존 키츠 등 영미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그렇지만 1943년에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 총 3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한 것이 밝혀져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들어가고 급기야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에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실렸습니다. 해방 후에 미군정 시절 강원도 도지사로도 임명되었지만 며칠 만에 사임하고 다시 이화여대의 교수를 거쳐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돌아와 1950년에 풍자적 수필집 <무하선생 방랑기>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1951년 6월 22일에 식중독으로 병사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력을 줄줄이 달아놓은 이유는 인생이란 이처럼 예감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영광과 치욕이 엎치락뒤치락 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이란 거창한 것 같지만, ‘숭고한 목적과 사명’이 나를 붙드는 것 같지만, 결국 도지사, 시인, 영문학자와 불령성인, 친일작가, 식중독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김상용 시인은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덧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1934년 <문학>지에 실었다는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예천 할머니와 시인의 마음이 다를 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네들에게 ‘왜 사냐고’ 묻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선방일기, 지금 여기서 나는

잠깐 가던 길 멈추고 ‘님의 거처’를 알아채기 위해 불가에선 수행자들이 여름과 겨울 한 해에 두 차례 안거(安居)에 들어갑니다. 안거에 들어가면 산문(山門) 출입을 금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법인데, 하(夏)안거는 4월 15일~7월 15일이고, 동(冬)안거는 10월 15일~1월 15일입니다. 헌책방에서 지허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 불광출판사, 2010)를 만났습니다. 뒷표지 갈피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2012.2.19. 파스샹달 전투-세계1차대전.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 전사자 60만 명.” 적요한 선방의 일기를 읽으면서 이 책 주인은 참혹한 전쟁을 떠올리고 있었다니 참 역설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지허스님은 탄허스님 문하의 수행자였는데,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이었던 원철스님에 따르면, ‘지허’ 역시 법명이 아니라 필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합니다. 곧 필자가 누군지 사실상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이를 두고 원철스님은 이렇게 전하더군요.

“어쨌거나 참 수행자는 자취를 구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는 구할 것이 없기 때문에 흔적이 없다고 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다(西來無意)’라고 단언하신 것이다.”

그러니 지허스님은 책을 썼지만 사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몸을 숨긴 것은 본래 종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허공으로 날아간 새의 흔적을 더 이상 찾지 말라.” <선방일기>에 그림을 더한 견동한 화백은 “한 찰나에 펼쳐진 모든 시간, 공간. 마음들이 ‘나’로서 종이 한 장에 그려져 담기는 것은 묘하다. 둘 아닌 자리에서 이 묘하디 묘한 것이 참다운 마음으로 온전히 나타나길 빈다.”고 했습니다. 글만큼 그림 또한 담백하고 저승인 듯 어렴풋한 눈길로 선방을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상원사에 동안거를 들어간 지허스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김장 울력이었습니다. 원주스님과 젊고 건장한 두 스님은 양념 구입차 강릉으로 떠나고 나머지 스님들은 무, 배추를 뽑은 뒤 각자의 소질대로 일에 열중했습니다. 무 구덩이를 파고 배추를 묻기 위해 골을 파는 일은 주로 소장스님들이 하고, 시래기를 가리고 엮는 일은 노장스님들이 맡고, 배추를 절이고 무를 씻는 일은 장년스님들이 담당했습니다.

배추 뿌리와 삶은 감자로 사이참을 먹으면서 부지런히들 했습니다. 그런데 김장이 끝나고서도 조실스님은 버린 시래기 속에서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김장에서 손을 턴 스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조실스님은 최악의 경우 최소한도로 먹을 수 있는 시래기를 다시 골라 엮고 있었습니다. 지허스님도 곁에서 시래기를 뒤지고 있었는데, 평소 과묵하신 조실스님이 시래기를 계속 엮으면서 말을 이어 갔습니다.

“옛날 어느 도인이 주석하고 계시는 토굴을 찾아 두 납자가 발길을 재촉했었다오. 그런데 그 토굴에서 십리쯤 떨어진 개울을 건너려고 할 때 이런 시래기 잎이 하나 떠내려 오더래요. 그러자 두 납자는 발길을 멈추고 이렇게 중얼거리더래요. ‘흥, 도인은 무슨 도인, 시래기도 간수 못하는 주제인데 도는 어떻게 간수하겠어. 공연히 미투리만 닳게 했구료.’ 하면서 두 납자가 발길을 되돌려 걷자 ‘스님들, 스님들, 저 시래기 좀 붙잡아 주고 가오. 늙은이가 시래기를 놓쳐 십 리를 쫓아오는 길이라오.’ 두 납자가 돌아보니 노장스님이 개울을 따라 시래기를 쫓아 내려오고 있더래요. 시래기를 붙잡은 두 납자의 토굴을 향한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겠지요. ...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식물(食物)은 아껴야 하겠지요. 식물로 되기까지 인간이 주어야 했던 시간과 노동을 무시해 버릴 순 없잖아요. 하물며 남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식물이야 더욱 아껴야 하겠지요.”

그 말에 지허스님은 그저 입을 닫을 뿐이었습니다. ‘진리 앞에서 군말이 필요할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지허스님의 고소한 동안거 이야기는 직접 <산방일기>를 읽어 보어야 제 맛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동안거를 해제하는 날 일기가 새삼 묵직합니다. 지허스님은 “해제 날이다. 새벽 두 시다. 모두들 들뜬 기분이어서 벌써들 일어났다. 도량석을 하는 지전 스님의 염불소리가 무척이나 청아하다. 산울림도 청아하다. 신라 대종이 울린다. 산울림도 은은하다.”고 했다. 그날 상원사를 나서면서 함께 수행했던 도반과 미련 없이 “성불하십시오.” 인사하며 층층계 밑에서 헤어졌습니다. 한 분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지허스님은 강릉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합니다. 상원사 동안거에 들어선 스님들은 임이요 동무인 그분을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동무를 만나기도 하고, 동무와 헤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동무의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sonntag.ch
사진출처=sonntag.ch

연마된 연장

<가문비나무의 노래>를 지은 마틴 슐레스케가 지은 또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순례자>(니케북스, 2018)입니다. 슐레스케는 이 책의 시작을 ‘메타노이아’로 시작합니다. 회심, 잠시 일하던 손을 접고 문득 새삼 내 삶의 원천으로 돌아가 성찰하라는 고요한 전갈일 겁니다. 바이올린 제작자인 슐레스케는 어느 추운 겨울날, 무늬가 뚜렷한 보스니아의 단풍나무로 첼로의 뒤판을 깎았던 경험을 전합니다.

첼로를 깎는데 사용한 연장은 알프스의 슈투바이 계곡에서 연마해 온 것이었고, 기다란 나무 손잡이는 고령의 마이스터가 만든 것이라 합니다. 손잡이 부분의 끄트머리는 둥글게 제작되었는데, 끝부분이 복부 근육에 닿아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연장을 움직이는 주체는 손이지만 딱딱한 나무를 깎을 때마다 연장을 밀어 필요한 힘을 공급하는 역할은 배가 한답니다. 팔 근육은 쉽게 피로해지므로 첼로 판을 자르고 깎아내는 일을 도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무를 깎는 게 평소보다 더 힘이 들었던 날, 슐레스케는 ‘휴, 이번 나무는 유독 딱딱하군. 이토록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하였지만, 곧바로 문제는 나무가 아니라 연장이었다고 깨닫습니다. 날이 무뎌진 것입니다.

“날을 연마할 때는 인내심을 갖고 신중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우선 연마기로 날의 모서리를 대략 갈아 낸 다음, 물을 뿌려 가며 숫돌로 세심하게 벼려야 합니다. 적당한 힘으로 날을 벼리고 있는지는 손끝에 전해지는 저항과 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양날의 거스러미가 제거되면, 연장은 새 힘을 얻습니다.”

코헬렛에는 “쇠가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을 더 들여야 한다. 그러나 지혜를 유용하게 쓰면 득이 된다”(10,10)고 했습니다. 무뎌진 연장처럼, 무딘 마음으로 살면 사는 게 힘들고, 영혼은 쉽게 피곤해진다고 슐레스케는 말합니다. 그러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딘 연장으로 일하는 바이올린 마이스터가 나무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듯, 무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작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을 등한시하고, 내버려 두어도 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수가 있습니다. 삶의 매 순간에 깃든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며, 현재에 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삶의 결을 거슬러 살게 됩니다. 그런 삶에는 울림이 없습니다.”

슐레스케는 마음이 무뎌졌다는 것은 마음이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고, 소망이 흐려지고, 희망이 멀어지고, 내적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상대로 일을 하다 보면 무뎌지는 연장처럼, 우리도 세상을 상대로 일하다가 무뎌진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을 부수는 자는 그 돌에 다칠 수 있고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 나무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코헬렛 10,9)는 말처럼,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연장이 무뎌지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슐레스케는 “사용하지 않은 연장만이 예리한 상태로 남습니다. 우리가 무뎌졌다는 것은 소명 대로 사는 일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무뎌진 마음을 벼리려 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슐레스케는 일단 작업을 멈추라고 합니다. 불가의 수행자들이 안거에 들어가 용맹정진 하듯이, 우리에게도 마음을 벼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슐레스케는 마음이 산란해지고 무뎌진다고 느끼면 작업장 옆에 마련해 둔 작은 방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방’으로 말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그는 악기의 음이 맞지 않는데 열과 성을 다해 연주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연주하기 전에 반드시 악기를 조율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 일을 멈추고 먼저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작업은 수도자나 성직자에게만 요청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음색에 맞추어 제 마음을 조율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에 내재하는 능력입니다. 다만 그 능력을 깨닫고 꾸준히 연마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그 힘이 무르익게 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과 맞닿아 있습니다. 가슴에 사랑을 품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진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지인이 말했습니다. ‘사랑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말을 걸어온다.’”

사랑 안에 계신 그 한 사람을 만나자는 게 수행입니다. 그이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문득 새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길동무입니다. 평생 자기 집을 떠나지 않았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내 이웃에 천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래기를 줍던 조실스님과 끌과 조각도를 연마하는 슐레스케가 그런 길동무였던 것처럼, 아직 여물지 않았고, 늘 다시 허방을 짚고, 다시 무뎌지곤 하는 연장을 만지며 ‘나’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그 부족한 나를 하느님 안에 던져 넣고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겨울입니다. 나자렛 산촌의 마리아가 아홉 달 동안 예수아기를 자궁에서 키우신 것처럼, 그 아기에게 ‘마리아의 노래’를 불러 주었던 것처럼, 우리 이제 친구하자며 지상으로 오실 하느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Ein Film über die Geheimnisse des Geigenbaus und die Erforschung des Klanges. Der Geigenbaumeister Martin Schleske im Gespräch | Quelle: Sennheiser Geschäftsbericht 2012.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평론> 2021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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