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절망을 넘어 생태 회복의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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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절망을 넘어 생태 회복의 희망으로
  • 이현아
  • 승인 2022.01.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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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칼럼

슬픔에 직면하기

우리는 지금 수십만의 생물종과 이별하는 중이다. 2019년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UN IPBES) 7차 총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1/8에 해당하는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이들 중 50만 종은 생존할 수 있는 서식 공간이 없다. 동식물의 서식처인 숲과 삼림이 2000년 이후 매년 650만 헥타르(㏊)씩 사라지고 있다. 인간 활동의 급격한 증가로 1970년대 이래 지표면의 75퍼센트가 현저히 변형됐고, 해양 지역의 66퍼센트가 치명적인 상태에 있으며, 85퍼센트 이상의 습지가 사라졌다.

인간의 지나친 활동은 동식물의 멸종뿐 아니라,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에 기반을 둔 인간 문명은 지구 온도를 높여 기후 위기를 초래했고, 삶의 기반도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폭염, 한파, 태풍, 홍수, 산불 등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 기상 현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피해와 희생이 매년 국내외 뉴스를 장식한다. 아프리카·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일상적 물 부족과 사막화 확산은 지역 농업 시스템을 교란했으며, 식량 부족으로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의 덩그런 눈망울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두꺼워진 양심을 두드린다. 해마다 발생하는 2,500만 명의 기후 난민을 어떻게 분산·수용할 것인지가 국제정치·사회의 주요한 쟁점이 됐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부장관은 물에 잠긴 국토 위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인식하지 못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날보다 더 안정적인 시기일 것이라는 점이다. 2021년 8월 9일 발표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6차 보고서는 이대로 가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 생태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래전 예견된 재앙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 막을 내린 COP26 회의에서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힘써야 할 이 짧은 유예기간을 다시 한 번 미루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비통함, 그 안에서 스러져 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통함,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밀려드는 우울감 등 ‘기후 우울’과 ‘생태 비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부정적 현실과 슬픔의 감정들에 직면해야 한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했던 생태계 생명들과의 이별, 예측할 수 없는 미래, 그럼에도 변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완고함을 분노와 연민, 슬픔으로 마주해야 할 때다. 외면은 더 이상 답이 아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섣부른 절망, 거짓된 희망을 넘어서기

“이스라엘의 이집트 포로 생활의 본질적 차원은 그들이 견디는 법을 익혔을 때 시작되었다.”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 속한 하시딤(Hasidim)의 랍비 하녹(Rabbi Chanoch)이 한 말이다. 불의한 현실에 저항할 힘을 잃었을 때, 부당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게 될 때가 진정한 절망의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 옛날 이스라엘이 이집트나 바벨론에서 포로의 삶을 살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인간중심주의, 물질중심주의, 소비주의, 경제성장중심주의 아래에서 포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제적·물질적 포로의 삶을 그저 받아들일 때, 변화를 향한 희망을 놓아 버릴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망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기후 위기의 현실, 이 절망의 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돌아설 수 있을까? 무엇을 해도 파국을 향해 가는 이 시계를 멈출 수 없다는 ‘성급한 절망’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결국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태가 호전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거짓된 희망’을 넘어서, 참된 희망을 만들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용기 기르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파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행동을 위한 강력한 촉매이다.”(짐 안탈, 기후교회)

인간은 전 지구적 생태계 파괴의 유일한 주범이지만, 모순되게도 이 위기를 극복할 힘 또한 인간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의 이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두려움과 절망을 드러내 공유하고 정직하게 인정할 때,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재앙이 코앞에 닥쳤다는 사실을 절실히 인식할 때, 우리는 결국 움직이게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는 ‘뉴노멀’(New Normal)을 외쳤다. 이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일은 결국 새로운 비전을 갖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경제성장과 소유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현실이라고 교란하는 세상을 넘어, 그 자체로 이미 풍성하고 온전한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석연료 기반의 풍요로운 삶으로부터 돌아서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절제와 비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 즉 다양한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느끼는 존재의 풍요로움을 상상하고 만들어 갈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생명문화 대안을 계속 제안하고 퍼뜨려야 한다. 이집트 노예 시절의 고기 가마 곁을 그리워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지 말고, 경제적 풍요·소유가 우리 안전을 보장한다는 거짓된 선동을 극복할 용기를 공유해야 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무겁게 절망하고, 계속해서 희망하자. 절망을 직시하고 행동하는 희망만이 참된 희망이다. 
 

[출처] <뉴스앤조이>

이현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여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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