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그만 빌고 복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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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은 그만 빌고 복이 되자
  • 이원영
  • 승인 2022.01.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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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2022년 1월 1일 아침이다. 며칠 전후로 새해 인사가 전화 메시지로 한가득이다. 새해 인사라고 해야 늘 듣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상투적이지만 이만큼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하는데 말이다.

복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복이 뭘까? 국어사전에서는 복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1.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2.어떤 대상으로 하여 만족과 기쁨이 많음을 이르는 말
3.해당되는 몫을 많이 가지거나 당하거나 겪게 되는 처지

복이란 한자는 ‘시(示)’와 ‘복畐’의 회의문자(會意文字)로 하늘, 또는 신의 도움으로 항아리가 가득차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또 갑골문자를 근거로 신에게 술을 따라 복을 기원하는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위의 해설에서 복의 의미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항아리가 가득한 물질적 풍요로 만족을 느끼는 것이고 두 번째로 그런 복은 하늘의 도움(천운)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채집과 수렵으로 생활하던 선사시대를 지나 농경사회로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물질적 풍요는 풍년을 맞은 해, 또는 우연히 발견한 사슴을 사냥했을 때, 열매나 곡식을 많이 채집할 수 있는 지역을 발견했을 때다. 이 모든 기회는 하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은 하늘(신)이 허락하신 풍요다.

복만으로는 안돼

역사상 오늘처럼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온 적이 있을까? 인류가 풍요롭다는 증거는 인구의 증가다. 그런 측면에서 인류는 어느 때보다 많은 복을 누리고 산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을까?

몇 년 전 가수 장기하의 노래 <새해복>이란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어머니 아버지 새해 복 새해 복
할머니 할아버지 새해 복 새해 복
친구들아 너네들도
새해 복 새해 복
언니 오빠 동생 동창
친구 원수 아군 적군
이 사람 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너도 나도 모두 다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 해야지 안돼
노력을 해야지 안돼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 해야지 안돼
열심히 해야지 안돼
흰눈 내리는 날에도 새해 복 새해 복
하늘이 파란 날에도 새해 복 새해 복
가버린 작년에 있던
슬픈 일들은 잊어 버리고
왠지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 해야지 안돼
노력을 해야지 안돼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 해야지 안돼
열심히 해야지 안돼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안돼 안돼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안돼 안돼
올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말하고 싶겠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말하고 싶겠지

 


이 노래가 더 충격이었던 이유는 당시의 상황과 관계가 있다. 나는 교회에서 청년목회를 담당하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흙수저가 뜨거운 감자였다. 노력해봐야 뒷배가 없으면 취직도, 승진도, 결혼도 못하고 집도 사기 힘들어 3포, 5포를 넘어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를 말했다. 이전 세대와 달리 밥만 주면 고마운 시대를 지났다. 굶어죽지 않는 게 복이란 라떼로 어르고 달래려는 꼰대들의 향연에 젊은이들은 숨막혀 했다. 구세대의 복은 더 이상 복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복은 그만 빌고 복이 되자

복이란 하늘이 허락한 풍요로 기쁨과 행복한 감정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우울증과 자살, 다툼과 반복이 극에 달한 시대 속에 살고 있다. ‘풍요 속 빈곤’이다. 전체를 모으면 풍요롭지만 개개인을 살펴보면 이전보다 가난하다. 1:99란 표현처럼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1:99의 현상은 오늘날에만 있지 않았다. 성서에서 보여주는 최초의 양극현상은 출애굽기(탈출기)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와 히브리 노예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 때 히브리 노예의 조상인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왕조가 바뀌면서 이전 왕조의 수혜는 사라지고 하층민으로 추락했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신분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민족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선, 아니 유일한 방법은 탈출이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 뿐이다.

히브리 노예에게 탈출은 복이었다. 이 복은 하느님에게 왔지만 하느님의 사람 모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집트 신분사회에서 새로운 세상 가나안으로 이끈 모세가 히브리 노예에게 복이 된 것이다.

모세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느님으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당도했다. 갈대아 우르 역시 왕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신분사회였다. 그곳에서 하느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서 복의 근원이 되라는 소명을 받은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감 떨어지길 기다리며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감을 따서 먹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의 복이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복을 기다리기 보다 복을 만들어내고 복, 그 자체가 되었다.

복을 영어로 번역하면 happy다. Happy와 happen에 포함되어 있는 영어 어근 hap-은 Old English(고대 영어, 앵글로색슨)의 hæppan ‘’to move accidentally, slip(우연히 움직이다, 미끄러지다)’ 또는 Old Norse(고대 스칸디나비아어[語]) happ "chance, good luck(기회, 행운)’ 에서 유래했다.

영어에서 복은 기회, 시간이란 개념이 있다. 어쩌면 복된 일을 선택하고 복을 만들어가는 시간들이 모여 사건이 일어나면 복이 되고 그 시간을 선택하고 실천한 사람이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면 좋겠다. 하지만 복은 완성된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늘(하느님)은 복을 만들 기회를 주고 우리는 때에 맞춰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한다. 그 결과 복이란 열매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한해를 시작하며 복을 가꾸고 복을 나누는 복의 근원, 복의 사람, 아니 복 그 자체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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