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관 점심시간 장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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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 점심시간 장면 하나
  • 최현숙
  • 승인 2021.12.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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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지 할머니는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에 혼자 살고 있어서 다른 독거노인들보다는 형편이 좀 나으려니 했는데, 유난히 도드라질 정도로 먹고사는 형편이 수급자 노인들보다 안 좋았다. 전세 보증금 8,000만원에 아들까지 있어 수급자가 안 된다고 했다. 수급자가 아닌 노인은 3,000원을 내고 복지관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 밥 좀 그냥 먹게 해달라고 여기저기 부탁을 해서 결국 무료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료점심을 얻어낸 후로 그녀는 복지관 점심을 가운데 놓고 다른 일정들을 앞뒤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지냈다. 공공근로를 따낸 달에는 월 20~30만원이 더 들어오지만, 그 일은 불안정하다. 그러니 노인기초연금 30만원이 거의 유일하고 안정적인 수입이다. 공공근로가 있는 날은 아침 7시 반까지 동사무소에 모여야 한다. 느린 몸으로 씻고 챙기고 머라도 좀 배에 넣고 나가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쓰레질 마치고 오면 오전 10시경. 복지관 점심을 향한 준비 시간이다. 준비라야 등에 짊어질 작은 배낭 하나다. 11시 30분부터 점심을 주기 시작하니 이른 준비도 아니다. 곯아빠진 무릎으로는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지하철로 가면 무료지만 한 정류장을 가자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전철을 기다리고 하느니, 차라리 걷는다. 버스는 요금을 내야하고 복지관이나 구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는 시간이 안 맞는다.

점심은 최대한 많이 먹어둔다. 지 할머니의 식탐에 대해서는 복지관 안팎에 말들이 자자하다. 식판에 음식을 떠주는 사람들도 지 노인이 많이 먹는 걸 알아 처음부터 많이 떠주는데, 다 먹고는 더 달라고 꼭 한번을 더 온단다. 배식하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다른 노인들 식사량만큼을 또 떠준다. 그걸 들고 자리에 가서 먹는 척 하다가 가방 속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얼른 한꺼번에 쏟아 묶어 배낭에 넣는다. 모두들 그 모습을 흘깃하지만 말마디는 고사하고 그 장면에서 지 할머니의 눈길을 먼저 피해왔다.

그러다가 3,000원짜리 식권을 꼬박꼬박 내고 밥을 먹는 김 할머니와 시비가 붙었고, “니가 무슨 참견이냐.”며 “세금으로 주는 밥”이라며 소리 소리 지르는 싸움까지 갔다. 복지관 직원들이 말려 싸움은 가라앉았다.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고 자기 식판에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것을 못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원들도 지노인의 습성을 모르지야 않지만, 대놓고 못하게는 못해 왔다.

지 할머니와 김 할머니의 싸움판을 보는 다른 노인들의 속내는 다들 시끄럽고 심난했다. 각자들 살아온 배고픔과 서러움의 내력 때문에라도 먹는 걸 가지고는 대놓고 머라 못해왔다. 살아오면서 김 할머니 류에게 당했던 장면들이 있었고, 지 할머니 류의 입장에서 겪었던 각자들의 서러움과 꼬라지들이 징글징글 해서 지 할머니 꼴 역시 보기 싫었다. 그러니 지 할머니 빼고 다른 노인들끼리만 쑥덕거리는 거고, 지 할머니 역시 그 쑥덕거림이나 속마음을 모르는 멍충이는 아니니 복지관에서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미경 역시 이 일을 여러 할머니들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지 할머니에게 슬쩍이라도 언급하지 못했고, 지 할머니 또한 다른 서러움은 다 말해도 그 이야기만은 미경에게 꺼낸 적이 없다. 먹는 거로는 그런 거다. 

* 이 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21년 겨울호에 실린 것입니다.

최현숙
주로 여성과 노년에 대한 집필을 하고 있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할배의 탄생> 등 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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