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문화에 저항하는 교회의 아비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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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문화에 저항하는 교회의 아비투스
  • 최태선
  • 승인 2021.12.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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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00-210년 경)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00-210년 경)

서기 240년 경 교회에서 교리문답 교사로 일했던 것으로 보이는 퀴리누스는 당시 그곳 주교로 임명된 키프리아누스에게 교리교육과 관련된 교과 과정 작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종교적 가르침을 요약하는 간결한 표제들의 목록을 요청했다. 부탁을 받은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퀴리누스 3>이라고 알려진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은 각각 그 내용을 지지하는 성경구절들의 인용과 함께 120개의 진술로 이루어졌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서 전체에서 말씀이 인용되었고 각각의 진술은 한 개에서부터 36개의 성서의 말씀들이 인용되었다. 신약의 인용이 구약보다 많고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은 마태오 복음이다. (내 생각에) 아마도 산상수훈의 인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키프리아누스는 퀴리누스에게 이런 내용들을 읽기 쉽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서 형태로 만들어 주었는데 퀴리누스가 가르치는 세례 지원자들에게 성서 본문을 암기하고 자주 반복해서 말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문맹자가 많았던 세례 지원자들은 인용된 본문을 외웠다.)(p.270-271 요약정리)

그러면 이 <퀴리누스 3>은 실제로 교리문답용 교재로 사용되었을까?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퀴리누스 3>을 무시했고 때로는 그것이 교부 문헌 중 가장 지루한 것 중 하나라고 간주했다. 결국 그것은 그저 하나의 목록일 뿐이라고 말한 어느 학자의 말처럼 그것은 수많은 도덕적 가르침들을 무질서하게 열거하는 목록으로 간주되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교리문답과 관련된 최근의 권위 있는 연구에서조차 <퀴리누스 3>은 전적으로 무시되었다. 신학을 논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아하지 않고 단지 실용적이다.(p.271-272 정리 요약)

나는 이러한 학자들의 태도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사변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교리 중심의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이것이 초기교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아비투스(아비투스(habitus)란 피에르 브루디외에게서 차용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관습을 통해 구체화되고 습관화된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그것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반사 행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아비투스는 성서의 말씀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둔다.)를 사라지게 만든 가장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던 ‘어둠 속에 울린 종소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루터는 수도사로서의 수행(고행)을 열심히 실천하던 사람이었다. 일상처럼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던 그는, 목표지점에 올라 일어서려다 발이 저려 넘어지며 종이 매달린 줄을 잡았고 그 순간 종소리가 어둠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가 그의 마음에도 울렸다. 그 순간 그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침내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으로 폄훼하기에 이른다. 그의 후예들인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행위를 부인하고 오직 믿음(Sola fide)을 강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개신교 그리스도교는 믿음지상주의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완전히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된 것이 행위, 즉 기성문화에 저항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아비투스였다.

이것이 생명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사변적인 종교놀이로 변모시켰다. 물론 나의 그리스도교 이해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며칠 전에도 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몸으로 전하는 복음에 대한 강론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핵심을 꿰뚫는 강론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럽다. 존경스럽다. 맞다. 지금이 바로 몸으로 전하는 복음,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아비투스를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목록의 작성자인 키프리아누스는 귀족 출신이었다. 키프리누스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했을 때 특별히 그를 괴롭혔던 것은 엘리트적 삶에 대한 그의 집착이었다. 그래서 그는 <퀴리누스 3>에서 “선행과 자비의 유익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제1계율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키프리아누스가 이 우선적인 계율을 위해 인용하는 성경 본문은 성경 안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에 속한다. 그것은 이사야 58,7(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면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로 시작하고 계속해서 마태복음 25,40(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대하여 한 것이니라)로 나아간다. 키프리아누스는 자신의 계율들 안에 요약되어 있는 자기가 힘들게 얻은 성경과 삶에 대한 이해가 카르타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유용하기를 바랐다. 그는 그들이 ‘말이 아니라 행위로 노력하기를’ 바랐다.”(p.272-273)

내 생각에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를 읽으면서 지금 내가 지적하고 인용하고 있는 부분에서 감동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책을 줄을 치면서 읽는 사람은 키프리아누스처럼 귀족은 아니지만 지적으로 물질적으로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그리스도교는 이미 충분히 변질된 그리스도교이다. 그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이다. 나는 믿음이 행위에서 사변적인 것으로 변질되면서 가장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한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노예들도 복음의 중핵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비투스 덕이었다.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그것을 잠식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는 “이교식 생활 방식에서 빠져나오는 초보 신자들의 인식의 습관과 판단 기준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꾸는 것”(p.235)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초기 교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던 반문화적 아비투스를 오히려 신봉하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라는 간판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런 일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대세가 된 것이다.

오늘날 규모가 있는 교회들의 목사들의 면모를 살펴보라. 박사 학위가 없다면 아버지가 그 교회의 담임목사여야 한다. 아버지가 규모 있는 교회의 목사인 경우 아들 목사는 예외 없이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나는 복음의 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변질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의 알짬인 하느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평화의 나라이다.

엘리트주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느님 나라를 부인한다. 오늘날 교회가 하느님의 정의를 시장의 자유와 민주주의로 대치한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엘리트주의가 자리하게 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결과이자 열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내세워 하느님 나라의 평등을 허물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될 수 없게 만들어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없도록 만든다.

그래서 학자들은 학자이기 때문에 <퀴리누스 3>을 무시할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교는 다시 생명의 종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초기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아비투스의 회복이야말로 초기교회에서 성공했던 “이교식 생활 방식에서 빠져나오는 초보 신자들의 인식의 습관과 판단 기준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꾸는 것”에 도전할 수 있고 교회의 아비투스가 반문화적인 아비투스로 “산위의 동네”가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반사 행동으로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 길을 갈 수 없고,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복음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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