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무엇을 줄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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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무엇을 줄일 것인가?
  • 이원영
  • 승인 2021.12.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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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날이 많이 풀렸다. 비 온 뒤 따뜻한 온기로 안개가 가득하다. ‘땅심 살리는 퇴비만들기’를 참고해서 텃밭 갈무리에 모아둔 작물 부산물과 마른 풀, 염분을 제거한 음식물 찌꺼기가 발효되도록 막걸리를 부어 흙과 섞어주었다.

퇴비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내부에 온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겨울에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다. 공방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톱밥을 얻어와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꾸 미루고 있다. 톱밥 대신 낙엽, 깻묵, 당밀을 섞어서 덮은 뒤 외부 온도에 영향을 덜 받도록 비닐을 씌워도 될 것 같다.

농사로 삶을 전환한 후 나는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생존전략은 생활규모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몸에 익은 소비습관을 바꾸기가 어렵다.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이전보다 덜 쓰지만 아직 수입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더 아낄 수밖에 없다.

움직이면 돈이 들어 일신의 폭이 자꾸 좁아진다. 지인과 만나거나 모임이 있으면 커피 한 잔 사고 싶어도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 어렵다. 내 사정을 아는 이들도 알아서 나보다 앞서 계산대 앞에 선다. 고맙고 미안하고 민망하다.

어쩔 수 없이 덜 소비하는 생활은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면서 자족의 비결을 배운다. 일상을 되돌아 보면 매일 사용하는 물품보다 쓰지 않고 쌓아둔 것이 너무 많다. 음식, 신발, 옷, 그릇, 필기구 등 삶의 규모를 줄여야(다운사이징) 한다.

 

<다운사이징>이란 영화가 있다. 기후위기와 인구증가와 더불어 지구를 뒤덮는 플라스틱으로 인류의 생존이 어렵다는 배경으로 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인간의 몸을 줄이는 다운사이징 기술을 개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키가 180cm인 사람이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게 되면 12.7cm 크기로 줄어든다. 물리적 크기가 작아지니 소비도 줄고 쓰레기 배출도 적어진다. 인류가 모두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게 되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기후위기 극복과 해결이란 대의명분으로 소인이 되지 않았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손익계산에 따라 다운사이징을 선택한다. 요즘말로 다운사이징은 가성비 좋은 생활인 것이다.

소인들이 모인 세상은 모두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아갈까?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빈부의 격차가 있다. 부자는 파티와 환락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고 가난한 이들은 부자들이 소비하고 남긴 부스러기를 챙기고 음침한 빈민굴에서 생활한다. 물리적 크기만 작아졌을 뿐 삶의 부조리는 여전히 남아서 사람들에게 변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무엇을 위한 다운사이징인가’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내년이면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학교생활을 위해 가방을 사러 대형마트에 갔었다. 아이가 원하는 가방은 기능적 실용성보다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이었다.

당시 여자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만화 캐릭터는 0000체인지의 여자 주인공이었다. 당연히 딸아이도 그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가방을 원했다. 가격을 알아보니 같은 기능의 가방보다 몇 배는 비쌌고 그런 가방은 그림만 없을 뿐이지 집에 이미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캐릭터 가방을 너무 갖고 싶어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에게 가방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그와 같은 가방은 이미 집에 있기에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그 돈이면 네 이름으로 돕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 4명을 더 도울 수 있는데 입학기념으로 가방값을 국제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무척 실망했다. 그리곤 제 방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몇 분 후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가방값을 아프리카 친구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우리 부부의 영혼을 흔들었다.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0000체인지 가방이 너무 갖고 싶어요. 그런데 그 가방값이면 어려운 이웃을 4명이나 도울 수 있대요. 그러니 제 욕심이 작아지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한 후 가방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작아졌어요.”

욕망을 다운사이징하지 못하면 소인으로 축소된다고 해도 소비로 인한 기후위기와 쓰레기문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개인적인 추억을 통해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와 쓰레기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명확하다. 물리적 다운사이징이 아니라 욕망의 다운사이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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