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점점 부처님처럼 변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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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점점 부처님처럼 변해갔습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12.1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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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스물일곱 살에 무기징역 선고받고 25년째 감옥에 갇혀있는 제노비오가 있습니다. 중학교 중퇴인데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 과정을 마치고 독학사 자격을 얻고, 기능장 자격까지 취득했습니다. 지금도 직업훈련교도소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40만 원 받은 것에 이어서 이번에는 재난 지원금 25만원 받았는데 민들레국수집 찾아오는 손님들께 써 달라고 보내왔습니다.

이십 몇 년 전에 서울구치소 천주교 집회 때 제노비오를 처음 만났습니다. 무기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송을 기다리던 중에 천주교 집회에 나왔습니다. 얼마 후에 목포교도소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베로니카와 함께 목포교도소를 방문해서 만났습니다. 눈빛이 무척 사나왔습니다. 이십대 후반에 기약 없는 무기수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로니카가 옥바라지를 해 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부드럽게 변합니다.

공부할 수 있도록 제노비오가 다니다 중퇴한 인천의 중학교를 찾아가서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서 보내고 학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제노비오를 만난 지 십여 년이 넘던 그 해 어느 날 면회를 갔는데 처음으로 “영치금 넣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저녁을 드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점점 부처님처럼 변해갔습니다.

아래 글은 며칠 전에 베로니카께 온 편지입니다.

베로니카 누님께,

아침 햇살이 따뜻해 보여서 창문을 열었다가 동장군의 심술궂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추위가 수 없이 많을 텐데 벌써 걱정이네요.

안녕하세요?
대표님과 모니카도 잘 계시죠? 

요즘 코로나 때문에 또 다시 시끄럽네요. 베로니카 누님과 대표님과 모니카도 백신 접종 하셨죠? 저도 1. 2차 접종했고요. AZ로 1. 2차를 접종했는데 1차 때는 후유증 때문에 엄청 고생했어요. 몸살처럼 아프고 열이 39도까지 올랐어요. 약 먹고 이틀 정도 지나니까 안정이 되더군요. 2차는 큰 후유증 없이 지나갔고요. 

민들레국수집 손님들 중에는 확진 손님은 없으신가요? 여기는 11월초까지 운동, 접견, 전화까지 금지시켰다가 다시 풀었는데 엊그제(11. 29) 창업조의 공과에서 외부강사가 확진자로 밝혀져서 또 다시 모든 것이 중지되었어요. 심지어 출력도 금지되어서 지금 거실에서 움직이지도 못해요. 12월 5일(일요일)에 코로나 검사 받고 이상이 없으면 출력시키겠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아무도 확진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베로니카 누님,
며칠 전에 저에게 코로나 지원금 25만원이 왔어요(온누리 상품권). 그래서 베로니카님께 보내드리려고 보고전(택배)을 제출했어요. 늦어도 중순까지는 도착할 것입니다. 

(중략)

참, 오늘 보내주신 영치금 감사히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청송으로 직업훈련을 신청했어요. 전기하고 공조, 냉동입니다. 선생님과 상의해 봤는데 전기와 공조, 냉동, 온수온돌이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성탄절 후에 갈 것 같아요. 선발이 안 되면 다시 군산으로 갈 것 같고요. 아무튼 어디를 가든지 차분하게 잘 지낼게요. 종교 집회가 없으니까 답답하기도 하네요. 가끔씩 집회에 나가서 하루하루 되짚어 보는 것도 괜찮았는데...

베로니카 누님,
제가 항상 고맙고 감사하고 많이 사랑하는 것 아시죠? 늘 행복하시라고 기도드립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힘드시겠지만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노숙 손님을 위해서 오늘도 힘내세요.
다음에 전화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2021년 12.              
              제노비오 올림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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