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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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이유
  • 이원영
  • 승인 2021.11.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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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요즘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게으른 일출에 맞춰 잠자리를 정리하고 작은 텃밭 고랑 사이를 거닐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우리집 단골 손님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아내가 출근하면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청소와 설거지를 한다. 이렇게 작은 오전 일과를 마치고 멍하니 창밖을 보며 행복감에 젖는다. 홀로 있다는 행복에 내가 내성적인 인간이란 걸 다시 확인한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목소리를 크게하고 어른 보면 인사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았다. 괜히 부끄럽고 멋쩍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숙인 후 아버지 뒤로 숨곤 했다. 시키는 아버지도 답답하고 그러는 나도 어색하고 힘들었다. 내 기질과 성격 탓이다.

크면서 다른 사람 앞에 설 기회가 많아졌고 행사도 진행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청중을 울고 웃기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늘 내 공간과 시간이 없으면 짜증을 부렸다.

머리 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고, 그것을 말로 담아 전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힘들었던 상황을 주저리 종이 위에 늘어놓았다. 나에게 글은 말을 대신하는 언어요 기도다.

누군가로부터 ‘왜 글을 써서 SNS에 올리냐’는 질문을 받았다. 습관이 되어버려 그 물음에 바로 답하기 어려웠고, 그 후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내 마음같은 이야기를 써놓은 책을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대책 없이 직장을 잠시 그만뒀을 때였다. 하루를 강제하던 루틴이 사라졌으니 불안과 시간이 동시에 증가했다. 불안과 시간은 글쓰기에 가장 좋은 연료다. 연로가 마구 쏟아지니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냐며 그냥 쓰기 시작했다.

(중략)

그저 내가 그것밖에 잘 몰라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한 것 아닌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덜한 게 아니다. 다만 빨리, 한꺼번에 하지 못할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기 좋은 틈과 간격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더 깊고 단단한 통로를 낸다. 글쓰기도 그렇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기 앞서, 글을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확보되는 거리가 쓰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물러섰다가 한 번 더 고민한 뒤에 한 걸음만 나아가도 된다는 사실이 그들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그래서 썼다. 나를 괴롭혔던 모든 감정에 대하여. 그 감정을 일으킨 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을 차단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하여. 내 마음이 나 자신보다 부풀어 마음에게 질질 끌려갈 때 썼다. 유난히 자주 과로하는 편도체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중 하나라면 의식적으로 전전두엽의 노동을 독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많은 언어가 필요했다. 기분도 안 좋은데 글 쓰면 더 머리 아프지 않느냐는 물음은 적어도 내게는 어불성설이었다.”

위의 글은 이윤주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는 책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래그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문장마다 내 마음을 대신 적어내려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독백하듯 흐르는 글은 나를 살피고 위로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내성적인 사람이 타인과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더 좋은 글로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혼자서도 외롭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살기 위해, 삶을 버티기 위해, 심심해서 그냥 쓴다. 대밭에 들어간 복두쟁이가 자신만 아는 비밀을 소리치듯 그렇게 쓴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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