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를 쓸면서 스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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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쓸면서 스친 단상
  • 이원영
  • 승인 2021.11.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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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이원영
사진=이원영

겨울로 가는 계절이다. 입동이 지나고 새벽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새벽 5시면 눈을 뜨지만 이불 속 온기를 즐기며 다시 잠을 청한다.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집안의 냉기가 싫어서다.

게으른 잠은 7시 전후로 끝이 난다. 넓은 거실 창으로 해가 빛을 쏘면 어슬렁거리며 커피 한 잔을 탄다. 눈곱이 낀 눈을 비비며 바닥을 보면 낮게 깔리는 햇살의 각도에 티끌이 즐비하다. 이 티끌을 퉁쳐서 먼지라고 한다.

먼지가 보이면 쓸지 않을 수 없다. 빗자루의 자리를 진공청소기가 대신하고 있으니 먼지를 쓴다고 하기보다 흡집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가사에 게으른 나도 청소하게 만드는 햇살과 먼지의 조화다. 청소 좀 하라는 아내의 핀잔에 변명거리가 하나 생겼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먼지를 보지 못해서라고.

‘인생은 고해다’는 말이 있다. 고통의 연속이다. 아파서,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서 아프고 슬프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을 집착에서 온다고 한다. 선악의 판단과 선을 이루겠다는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다. 여기서 선과 악은 도덕적 판단이라고 보다 좋고 나쁨의 기호다. 이런 판단을 없애면 고통이 사라지는데 이런 과정을 사성제, 고(苦)·집(集)·멸(滅)·도(道)로 설명한다.

집착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란 법륜을 돌려야 하는데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이다. 순서에서 알 수 있듯 보지 못하면 시작도 할 수 없어 보인다.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쓸고 훔쳐내야 하는 먼지는 도대체 어디서 올까? 어느 책에서 먼지는 우주로부터 온다고 했다. 무심히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별똥별이 대기권을 뚫고 들어올 때 공기의 마찰로 타게 되는데 별똥별의 재가 먼지다.

먼지가 꼭 공기 중에 떠다니는 티끌일까? 옷을 입다보면 햇살 아래로 날리는 먼지를 본다. 옷 표면에서 날리지만 옷 속에서도 떨어진다. 내 몸의 각질이다. 먼지 속엔 내 몸 부스러기가 있다.

바깥에서 내 몸에 붙어 들어오는 것도 있다. 텃밭에서 묻은 흙, 산책 후 따라온 낙엽 부스러기, 음식을 먹다 흘린 부스러기, 고양이나 개를 쓰다듬을 때 붙은 털 등이다. 그러고 보면 먼지는 ‘뭔지 모를 티끌’을 통칭하는 말인 듯하다.

먼 우주로부터 가까운 내 몸까지 먼지의 출처는 다양하다. 온 우주를 담고 있는 먼지를 포집해서 보고 있자니 일상의 작은 일이 엄청난 무게와 크기로 다가온다. 먼지를 닦고 쓸어내는 일은 몸을 씻고 우주를 훓어내는 작업이다.

오늘도 내가 하는 일은 나로 시작해서 우주로 뻗어가는 에너지다. 착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눈 덮인 길에 찍어내는 발자국을 뒤따라올 누군가를 위해 흐트리지 말아야 한다는 옛 스승의 말씀이 스치는 아침이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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