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밥 말아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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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밥 말아 먹고 싶어요
  • 서영남
  • 승인 2021.11.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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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오래 전 어느 날입니다. 한가한 오후였습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제가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님이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라면에 밥 말아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라면 하나 끓였습니다. 밥도 한 공기 담아내었습니다. 참 맛있게 먹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굶주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식하던 사람이 소금 한 알 혀에 얹으면 그 맛이 황홀하다고 하는 것처럼 배고픈 우리 손님들에게는 아주 조그만 것으로도 멋지게 대접 할 수가 있습니다. 

영춘 씨는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삽니다. 몇 달째 방세도 못 내고 있습니다. 요리사인데 몇 달 전에 손을 다쳤습니다. 일거리가 있어도 손 때문에 할 수가 없으니 난감한 처지입니다. 도시락꾸러미를 가지러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옵니다. 영춘 씨가 어묵을 먹고 있습니다. ‘영춘 씨는 무엇이 제일 먹고 싶어요? ‘밥에 고추장 넣고 비벼먹고 싶고요. 또 국수 삶아서 고추장 넣고 비벼먹고 싶어요. 근데 고추장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제가 조그만 것 하나 사 드릴까요? ‘비싼데...’ ‘어묵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작은 것 하나 사 올게요.‘

분홍색 배낭을 맨 노인이 엄마가 해 주는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는 돌아가신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데도 엄마가 해 주는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기중 씨는 72년생 노총각입니다. 십여 년을 노숙을 했습니다. 머리카락도 몇 올 남지 않았고 치아는 다 빠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고등어조림이 제일 먹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니 뭐든지 맛있다고 합니다.

경희할머니는 이웃집 할머니입니다. 라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라면은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답니다. 옆집에 사는 석분할머니와 함께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라면 두 개를 푹 삶아서 국물을 따라버리고 설탕 조금 뿌리고 비벼 먹으면 꿀맛이라 합니다. 경희할머니는 어묵도 좋아합니다. 반드시 석분할머니 몫까지 가져가서 함께 드십니다.

수남 씨는 별이 열다섯 개입니다. 연세도 저와 동갑인 예순 여덟입니다. 세례명은 호세아입니다. 수남 씨는 생일도 모르고 나이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고아원에서의 기억이 첫 기억입니다. 수남 씨를 17년 전 한겨울에 처음 만났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나와서 연안부두 어느 건물 옥상에서 노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남 씨는 밥을 참 맛있게 또 많이 먹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시 세 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왜 다시 교도소에 갑니까?“ 오히려 제게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청송교도소 자매상담을 가는 것을 알고는 부탁을 합니다. 자기는 별이 열다섯 개인데 교도소에서는 언제나 개털 신세였답니다. 영치금도 없는 법자(법무부 자식)였답니다. 그때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것이 단팥빵이었다면서 청송 갈 때 단팥빵을 사서 형제들에게 나눠달라고 폐지 주워 번 돈 십만 원을 내어놓았습니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도시락오로만 끼니를 해결하느라 지친 우리 손님들에게 코로나19가 끝나면 제일 먼저 닭백숙을 해 드릴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갈비탕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손님들이 먹고 싶은 음식 중에는 삼계탕, 갈비탕, 육개장, 돼지불고기, 고등어조림, 돼지고기 김치찌개 등이 있습니다. 소고기는 먹고 싶지 않아요? 물어봤습니다. 갈비찜이나 소불고기 등은 너무 비싸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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