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그리운 이는 그리로 가시라
상태바
전두환이 그리운 이는 그리로 가시라
  • 최태선
  • 승인 2021.10.25 1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조선에서는 생난리가 벌어졌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길에 아예 나올 수가 없었다. 채홍사라는 자들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공녀를 보내야 하는데 뉘라서 자신의 딸을 공녀로 내놓겠는가. 심지어 재상의 딸들도 그 기간 동안에는 혼인이 금지되었다.

중국이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여기는 것은 전혀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물론 동이(東夷, 고구려를 칭하던)라도 중국의 중원을 차지하면 중국이 될 수 있다. 중화사상의 본질은 힘이다. 누구라도 힘이 있는 자가 천하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몽골의 테무진이 징기스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중국이란 실체가 없는 나라이다.

중국의 과거제도 역시 이것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중국의 과거는 철저히 신분이 철폐된 공정한 제도이다. 누구건 최고의 학문을 가진 자가 과거에 급제한다. 과거에 급제하면 그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는 능력에 따라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어느 사회건 유유상종이 있고 기득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것이 오래 가지 않는다. 중국이 중국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사회가 철저히 능력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중국의 민족 가운데 하나의 민족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조선의 정체성 가운데 사대정신은 조선을 구성하는 가장 굵직한 근간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중국이 관여할 필요도 없이 조선 내에서 처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것이다. 세종은 중국에 반기를 든 거의 유일한 조선의 왕이었다. 한글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라. 나는 그 내용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어리석은 백성이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 없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어쩔 수 없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내용이 훈민정음의 서문에 들어가 있는가. 그런 구질구질한 해설이 없다면 한글창제는 중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역이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세종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글뿐만이 아니다. 음악에서도 그것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세종은 조선의 돌로 편경을 만들었다. 편경은 피치파이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편경이 기본음이 되어 모든 악기를 조율한다. 그런데 그것을 조선의 돌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도 중국의 기본음을 무시하는 것이 중국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국의 기본음을 사용하는 음악은 정악이 되었고 조선의 기본음을 가진 음악은 향악이 되었다. 스스로 몸을 낮추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제야 비로소 한국이 세계라는 대열에서 한 나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이 문화의 강국이며 콘텐츠의 강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문화와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계의 열강 가운데 당당히 자리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트럼프가 망나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노벨상을 받을만하다고 그를 추켜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원하지 않아도 이란의 자금을 동결해야 하고, 중동에 평화군을 파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우리 군에 전시작전권이 없다는 사실처럼 이것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중국을 대국으로 인식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태극기부대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있고, 한국의 교회들은 미국 교회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와 노무현, 문재인정부가 다른 면이 바로 이 점이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대상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사대주의에 함몰된 속국으로서의 한국을 지향했다. 문재인 정부가 무력해 보이는 것은 훈민정음의 서문이 구질구질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국이 세계사 속의 한 나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아시아의 원조를 받는 개발도상국인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감격하던 나라에게 우리가 스스로 주장하지 않아도 세상의 다른 나라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선진국의 칭호를 부여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어떤 나라가 망했다는 것인가. 국힘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중국의 속국인가. 미국의 속국인가. 일본의 속국인가. 그들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나라야말로 그들의 말대로 망해야 하는 나라이다.

그것이 최근 윤석열의 발언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을 제외하면 정치를 잘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한 이후에도 권한위양이 잘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자신의 한 실언을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고 주장한다. 생각은 자유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치가 어떤 의미이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독립선언문 서문의 첫 부분이다. 독립선언문은 가장 먼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사실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그리워하는 나라는 이 독립선언문에서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는 독립국과 자주민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삼청교육대를 생각해보라. 당사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이 입은 피해를 생각해보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생각해보라. 언론통폐합과 언론 통제와 검열을 생각해보라. 복잡하게 해설을 할 필요가 없다. 독재다. 정말 우리나라가 독재국가로 회귀하기를 바라는가. 어딘가로 끌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고 정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들이 난무하는 그런 사회를 정말 바라는 것인가.

그것이 좋은 정치이고 권한위양을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나는 다가오는 대선이 한국의 독립국임과 한국인의 자주민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대선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권력과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제국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힘과 능력을 추구하는 세상이 희생의 체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희생양이 없는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ps. 전두환보다 정치를 잘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다. 전두환이 그리우신 분들은 그리로 가시기를 바란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