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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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그런 삶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10.18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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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마지막회

도로시 데이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영적인 동반관계와 공동체에 대해, 오래전의 기다림에 대해서, 그러나 지금은 약간 문학적으로 꼬면서 말했다.

“때때로 나는 내가 쓴 글을 보고 보내온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전혀 낯선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아니지요, 나는 실제로 그 사람을 모릅니다. 보통 ‘안다’는 상식적인 개념에서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실로네를 ‘만났을’ 때, 그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으며 같은 세대에 속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끔씩 생각하는 것보다 덜 외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약하게 느끼는 날들이 있습니다. 내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물론 많은 경우 몸도 피곤하지만­ 참을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위 ‘애덕’이 거의 바닥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깨어있기 위하여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날 것이고, 징조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냉소가 내 생각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많이 믿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퉁명스럽게 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고약한 회의주의자같이 느껴집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아, 그래요? 진짜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하지 그래요.’

나는 그런 아침이면 내가 갖고 있는 공격성에 놀랍니다. 나는 즉시 기도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느님께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사하고 청합니다. 그분의 용서를 청하는 것만이라도 더 자주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더 최악의 날에 나는 그것마저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잊어버립니다. 나는 너무나 시무룩해지고 갈수록 그 시무룩함 속에 매몰되어 버립니다. 말하자면 모든 다른 사람에게 그 시무룩한 상태의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눈 속에서 어떤 상처를 보게 될 때에만 비로소 제 정신이 듭니다. 그러면 방으로 가서 한쪽 구석에 앉아, 마치 선생의 명령을 받은 학생처럼 좋으신 주님께 저를 불쌍히 여기시라고, 곤경에서 모면케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용서의 주제가 우리들의 대화 속에 계속 떠올랐다. 도로시 데이가 사랑하는 책들에 관해서도 같은 주제가 떠오르곤 했었다. 때때로 그는 이 주제에 관해 나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심리학적이고 심리분석적인 작업분야에서 용서라는 주제를 발견할 수 있는지 묻곤 했다. 나는 이런 문제가 대답하기 어렵고 신경에 거슬리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도로시 데이는 그가 “심리학적”이 되기를 원했을 때, 디킨스 같은 이야기꾼을 자주 사용하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였다. 이 문제를 꽤 잘 풀어나갔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디킨스의 <음산한 집>을 읽었어요, 그리고 그가 등장인물들 중의 한 인물을 묘사하면서, 그녀의 원거리성 박애 행위에 대해 썼던 구절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난 그녀의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족은 돌보지 않으면서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떨어진 곳의 원주민들 문제에 몰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동안 어떤 단어가 내 귀를 맴돌았어요. 그것은 '비난'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나는 그때 그린위치 빌리지 생활에 젖어있었고, 모든 곳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으나, 내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었지요. 나는 비난이라는 말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허용하면서 나 자신에게 화를 냈습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누군가는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 착취를 당하거나 죽도록 굶고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원거리성 박애심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나는 문제를 던지고 거기에 대한 답들을 계속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편안치가 않았습니다. 내 안에, 어떤 구석에서 ­ 디킨스가 아마도 나같은 사람을 생각하며 이런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 책 (<음산한 집>)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와 주홍글씨로 내 마음속 깊이 이 원거리 박애심이라는 단어를 새겨놓고 싶은 욕구사이에서 찢겨지는 심정을 느꼈던 것이 기억납니다.

나는 지금도 어리석습니다 ­ 그때도 어리석었지요. 감상적인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제각기 당면해야 할 위험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킨스가 우리에게 원거리성 박애심을 말할 적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잣대를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환대의 집에 오는 거친 손님들 중에 한 사람이 식탁에 앉아 우리가 그와 그의 친구들을 위해서 만든 스프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을 때, 그는 내 안에 있는 이런 원거리성 박애심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난 그가 내 안에 있는 어떤 비참한 성향들을 골라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계속 스프를 응시하면서 왜 그가 스프를 먹지않는가, 그리고 채소를 얻고 만드는데 들어간 모든 노동에 대해서 또한 스프가 점점 식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며 내가 자기 일에 상관말고 내 일이나 걱정했으면 좋겠다고, 그냥 가서 내 스프나 먹고 자기에게 강요하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느낌을 가지려고 더 이상 애쓰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아, 난 그에게 너무나 화가 났어요. 난 그에게 아무도 이곳에 와서 스프나 커피 그밖에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린 사람들을 윽박지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떠들어댔어요, 그리고 내 설명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자신에게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원거리성 박애심’이라는 구절이 떠올랐고 나는 스프를 싱크대에 버리든가 아니면 그 남자의 머리위로 쏟아버릴 자세였습니다! 그는 그날 스프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난 찰스 디킨스를 내 책장에서 추방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요.”

디킨스의 저서에 나오는 용서의 주제는 도로시 데이에게도 중요한 주제였다. 그는 용서라는 주제로 끊임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디킨스의 책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적인, 종교적인 측면을 인정하였으며, 물론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극적인 순간도 잊지 않았다. 이 작품 끝머리에서 시드니 칼톤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하면서 길로틴으로 기꺼이 나아간다. 이 말은 성서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도로시 데이는 때때로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찾곤 했다.

 

그는 또한 디킨스에 관한 오웰의 유명한 글, 특히 오웰이 1868년 막내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발췌한 구절을 사랑하였다. 그는 종이조각에 몇 줄을 베껴서 나에게 여러번 언급하였다. 한번은 크게 읽기도 했다.

"너는 집에서 어떤 종교적인 의무나, 단순한 형식들 때문에 절대로 시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런 문제들로 나의 아이들을 진력나게 만들지 않으려고 늘 노심초사하였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 스스로 관점을 만들 수 있으며 나는 그것을 존중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가장 정중하게 그리스도교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너에게 새겨주는 것을 잘 이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 그분께로부터 왔으며, 네가 겸손하고도 마음을 다해서 그것을 존중한다면 잘못될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침과 밤에 기도하는 좋은 실천을 절대로 버리지 말아라. 나도 절대로 포기한 적이 없으며 기도로부터 오는 위안을 알고 있단다."

도로시 데이에게는 가톨릭적인 충실함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같은 측면이 뚜렷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왔다”는 구절을 특히 강조하였고 그 후에도 이 말들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그에게 주고 있는지 모른다고 분명히 말했다. 데이는 교회로부터 떨어져나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적인 순간들, 개인적인 순간들을 얼마나 즐기는지 모른다고 자주 말했다. 또한 그는 복잡한 교계문제가 그에게 닥칠 때 자주 가톨릭에 반항했던 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개신교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이런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식과 기념제를 사랑했으며 심지어 가톨릭 교회의 제도적인 권위도 사랑하였다. 그는 어느 이웃교회로 사라져서 홀로 앉아 기도하고 묵상하며 자아를 다시 찾을 수 있음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전국을 여행할 때에도 모든 교회들이 계속해서 이런 혜택을 주었다고 인정하였다.

책들처럼, 기도와 묵상과 예식은 기본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떤 때 작가들의 책을 갖고 교회에 가기도 했다.

“나는 성서이외의 다른 책에서 우리가 그분을 본다 해도 주님이 불편해하지 않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어떤 도시에, 버스터미날에 금방 도착했을 때가 가장 좋은 순간입니다. 나는 톨스토이나 체홉의 책을 읽거나 <빵과 포도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발견합니다. 아니면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교회 하나를 발견하면 그냥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몇가지 일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나는 기도하거나 하느님께 직접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가 읽고 있었던 책에 대해 그분께 말하기도 합니다. 나는 자주 이렇게 감명 깊은 책들, 깊은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이런 책들이 만들어지도록 주님께서 직접 가까이 손을 대지 않으셨을까 하는 상상도 합니다. 아, 나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어떤 특별한 개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곧장 그는 보충설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아름다움이 많습니다. 왜 나는 책만 골라낼까요? 난 방금 버스에 한 어머니가 애기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책에 있는 아름다움만큼이나 아름답고 은총이 가득차 있는 장면입니다.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의 모습, 아이에게 말하는 모습,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고 기대는 모습­ 책 속의 주인공들만큼이나 하느님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우리들은 쓰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애씁니다. 엄마와 애기 사이에 있는 침묵의 순간들로 말입니다. 그러나 물론 작가로서의 우리들은 적어도 그런 상태에 완전히 닿지 못합니다.

때때로 나는 낯선 도시의 낯선 곳에 있는 낯선 교회에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그전보다 더 가까이 느낍니다. 마치도 우리가 우리 삶의 일상적인 닻과 가장 적게 연결되어 있을 때 그분께서 스스로 가장 견고한 닻이 되어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난 실로네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들이 그들의 삶으로부터, 심지어 저술로부터도 벗어나 하느님, 사물들의 의미, 목적, 신앙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 모든 말들 ­ 너무나 진부하게 들리는 말들이지만 열렬히 추구하는 마음속에서 이 말들이 생명을 취한다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과 홀로 있으려고 노력했으나, 안락한 부르조아 삶에 있어 전통적인 의미의 사적인 공간과 여백을 찾기조차 어려운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 예수님과 자신의 특별한 순간을 얻고자 노력했으나, 가톨릭 교회의 군중들, 그리고 깊이 예배 속에 침잠 하는 모든 개인들을 또한 사랑하였다.

그는 한적한 곳에서 공부하고 생각과 기도에 몰두하기를 절실히 원했으나 ­바다에 가까울수록 더 좋은 곳에서 시끄러운 도시에서 살았고 수십개의 공동프로젝트에 관여하였다. 비록 관상적이고 예언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으나 그의 삶은 활동적이고 기본적으로 사목적인 것이었다.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집이 필요한 이들을 재우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땅에 뿌리를 두며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정신의 소유자였으나 신앙의 방향을 고수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세계의 관습과 우선순위들에 대해 거의 마음대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이런 대립적인 측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또한 그의 저술 안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한 후에 나는 포기하였고 그에게 직접 이 문제를 들이대었다. 한번은 그에게 만일 어떤 사람이 그와 그의 삶에 대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자서전과 전기가 갖는 위험들에 대해서, 즉 각자의 삶과 모든 삶의 아리숭함, 추상성을 허용치 않는 구체성에 대하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먼저 이 삶의 모순점들과 불가피한 불일치들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에 대해 그가 즐거워했다고 내가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도 내가 그의 삶에 대해 묵상하면서 이 사실을 잊어버릴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내가 그 전에도 되풀이해서 들었던 도전들을 제기하였다. 그것은 그가 어떤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려지고 기억되는 것이며, “처음에 약간의 허위성을 갖고 시작했지만” 어느정도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느님의 모범을 따랐던 추구자였다고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창문 바깥을 바라보기 위하여 잠시 멈추고 약간 침묵한 후에 천천히 파리의 대주교 쉬하르 추기경의 말을 인용하였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선전이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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