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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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서영남
  • 승인 2021.10.1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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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일기

십칠 년 전 어느 날입니다. 아버지는 사십대 중반의 막노동을 하는 사람 같았고 아들은 열서너 살 먹은 것 같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화를 내면서 왜 아이까지 데리고 왔느냐고 했습니다. 아이도 자기도 배가 너무 고프답니다. 밥부터 먼저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아이는 허겁지겁 두 그릇이나 밥을 비웠습니다. 식사 후에 사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는 데 일거리가 없습니다. 막노동으로 겨우 살았는데 일한 곳에서 임금을 못 받았습니다. 방세도 못 내고 거리로 나왔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학교도 못 다니고 함께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빈집에서 지내는데 먹을 게 없어서 염치불구하고 왔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함께 노숙을 합니다. 아이 이름은 정혁(가명)이라고 합니다.  정혁이에게 아빠가 일하러 가고 없을 때는 혼자라도 와서 밥을 먹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정혁이가 혼자서 식사하러 왔습니다. 
“정혁인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뭐지?”
“피자요”

민들레의 집 식구들도 피자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피자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배달만 한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서 삼겹살을 시켰습니다. 어찌나 정혁이가 맛있게 먹는지 고기만 구워 주다가 나중에야 겨우 몇 점 집어먹었습니다. 
“정혁이는 피자 다음으로 먹고 싶은 것은 뭐지?”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요.”

아이가 밥 먹으러 오면 특별히 김치찌개를 끓여 뚝배기에 듬뿍 담아 주었습니다. 

내일은 영하 십 몇 도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정혁이가 걱정이 되어 급히 월세 10만 원짜리 셋방을 얻었습니다. 기름보일러에 석유를 두 말 사서 넣고 방을 따뜻하게 해 놓았습니다. 정혁이네가 지내고 있는 곳에 가서 당장 이사하자고 했습니다.

옮길 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불도 냄새가 심해서 포기하기로 하고 집에 있는 이불을 내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함께 식사하러 온 정혁이 아버지는 밤새 정혁이가 네 활개를 치며 자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면서도 행복해 합니다. 단칸방이지만 방도 마련했고 필요한 가재도구도 이곳저곳에서 마련했습니다. 쌀도 나눠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집에서 밥 해 먹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후에 다시 정혁이가 민들레 국수집에 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허리가 아파서 일을 못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간 정혁이가 밥 먹으러 오질 않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정혁이네 집에 가 보았습니다. 정혁이 아버지는 미안하고 어색하고 그래서 못 오겠답니다. 정혁이는 아빠가 굶는데 혼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부터는 꼭 식사하러 오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손도장까지 찍었습니다.

그 후에 정혁이 아버지의 허리 아픈 것이 어느 정도 나아서 간혹 일도 하러 다닙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식사하러 오는 횟수가 점점 뜸해졌습니다. 정혁이도 야학을 다니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중입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곧이어 고입자격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학비가 들지 않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허가가 났습니다. 정혁이가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노숙을 하다가 그 처지에서 빠져나오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월세 10만 원짜리 셋방 하나로 노숙에서 벗어났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습니다. 외항선원으로 잘 지냅니다. 아이 아빠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막노동은 못 하지만 행정복지센터에서 자활 근로를 하면서 지냅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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