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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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 이원영
  • 승인 2021.10.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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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 딸이 어렸을 때 일이다. 아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만들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였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던 딸이 다른 아이에게 가서 말도 걸고 같이 놀자고 하면서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그리고 곧장 ‘친구집에 놀러가도 돼요’라고 해서 허락했다. 이후로 서로 집을 오가며 놀곤 했다.

한번은 아이가 친구집에 놀러간 후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왜 우냐고 물으니 친구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기 싫은데 왜 줬냐고 물으니 친구가 좋아해서라고 답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고 후회하는 눈물이었다. 주기 싫은데 왜 줬냐고 물으니 친구가 안 놀아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아이의 모습에 내 유년시절이 스쳐갔다. 나는 어릴 때 미니카를 좋아했다. 혼자 자란 나는 그 장난감 자동차를 이리저리 굴리며 혼자 놀곤 했다. 동네에서 친구가 생기면서 내 자동차 장난감을 빌려간 친구가 있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이라 빌려주기 싫었지만 친구를 잃을까 두려워 빌려줬다. 어떤 친구는 망가뜨리고, 어떤 친구는 흠집을 내고, 어떤 친구는 잃어버렸다고 했다. 당시 나는 장난감이 손상되고 잃어버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친구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친구가 좋아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독자로 자라온 외로움에 함께 노는 걸 좋아했고 맞벌이 부모님의 늦은 귀가로 모두가 집에 돌아가는 동네아이들의 귀가시간이 지독하게 싫었다. 혼자 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딸도 혼자 커서 그런지, 나를 닮아서 그런지 친구 좋아하고 그래서 상처받고 슬퍼하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아빠로서 더 많이 놀아주고 같이 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제 또래 아이들이랑 노는 게 제일인 것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제일 큰 상처는 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다. 오해를 푸는 시간은 어렵고 고통스럽다. 혼자 자라서 그런지, 기질 때문인지 함께 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함께 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고 교회가 관계의 기술을 가르쳐준 장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타인과 다른 점을 만나게 되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차이점을 공유하고 설득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논점이 다르면 사람들이 나뉘고 내 주위를 떠나고 했다. 다르면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이 질문은 내 인생의 화두가 되곤 했고 협상의 기술을 배웠다. 그래도 늘 실금같은 경계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고 가치관의 껍질이 두터워지면 사람들은 자꾸 편을 가른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은 끈끈해지고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은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지 말자고 해도 소용없었다. 견해를 좁히려는 토론이나 함께 하려는 협상의 묘미는 찾기 어려웠다.

공동체 안에서 생활할 때 누군가에게 00파, 00파, 이원영파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파벌을 형성한 일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소원한 관계가 하나 둘 생겼다.

‘교회에서 파벌이라니, 그것도 공동체 안에서…’

기성교회와 공동체를 떠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동안 맺어진 인간관계로 예전에 사역했던 교회 사람도 만나고 공동체 사람도 만난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난 추억을 함께 공유한 이들을 만나면서 내 편을 만들고 우리집 교회의 교인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조심해서 만남을 가지곤 한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해도 사람이 늘 고프다.

요즘 코로나로 교회가 어렵다.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나에 대한 오해의 소식을 들었다. ‘교회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 ‘교인을 뺏아간다’, ‘누구는 우리 가정집 모임에 참석한다고 하더라’와 같은 뜬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헌신했던 교회와 공동체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참담하다. 이제 사람 만나는 것도 조심해야 하나?

오늘 아침 선우정아의 <그러려니>라는 노래를 들었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음 음
그러려니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음 음
그러려니
그러려니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그리운 마음은

꼭 내 마음같다. 모두 잘 지내시길…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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