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복싱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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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복싱과 같아요
  • 이원영
  • 승인 2021.10.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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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7개월의 농사연수를 마무리했다. 농사는 하늘의 기운을 따르는 일이다. 계절과 절기, 해와 달 그리고 별기운을 살피며 뿌리, 열매, 꽃, 잎 작물을 심으며 자연의 순리를 배웠다.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작물을 심는 과정에서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땅을 잘 가꿔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농사는 신비와 경의로 가득했다. 작물이 자라는 과정과 변화는 늘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기다림과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농사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야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지한 말잔치인가? 텃밭을 조금 가꾸면서 농사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은 허세요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농부에게 모욕적인 말이다.

고된 노동으로 모두를 먹이는 농가를 살리고 국가적으로 안정적 식량자립을 확보하기 위해 농민기본소득의 필요성도 생각하게 되었다. 농부의 노동력과 농산물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싸다. 그렇다고 1차산업인 농산물 가격을 높이면 물가상승은 연쇄반응한다. 가격을 안정화시키고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2차, 3차산업으로 얻은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해서 농가에 돌리는 농민기본소득 정책을 실행하지 않으면 농가와 농업을 통한 식량자립을 불가능해 보인다.

농가에서 농작물은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농사방법은 화학비료를 사용해서 생산량을 늘리고 살충제, 농약을 사용해서 결실을 적게하는 관행농법이다. 하지만 관행농으로 얻은 먹거리가 과연 사람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는 농업진흥청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벼농사의 소출을 비교해 보면 관행농업(농약, 화학비료 사용)과 유기농업의 소출이 차이가 있었다. 벼가 자랄 때 질소비료를 주는 관행농이 많게는 유기농의 2배나 많은 쌀을 생산했다. 화학과 석유의 힘으로 자란 벼는 소출이 많을 수 있어도 병충해에 취약하고 땅을 건강하게 할 수 없다. 병충해를 위해 농약을 뿌리고 양분이 빈약한 땅에 화학비료를 뿌려야 하니 돈이 든다.

반대로 유기농은 순환농법으로 볏짚을 논에 뿌리고 녹비작물을 이용해 땅을 비옥하게 해서 벼를 기른다. 자연농법의 시초인 마사노부의 말에 따르면 관행농업과 비교해서 최대 80%까지 소출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유기농으로 벼를 가꾸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매년 비슷한 소출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자연을 보호하고 땅을 잘 가꾸는 일이 돈도 적게 들고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농사연수를 마무리하면서 다른 날보다 몸을 빠르게 움직이고 힘도 더 많이 썼다. 그래서일까? 점심 후 오후 일과가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땀도 많이 나고 호흡도 힘들어 자주 일을 멈췄다. 그래도 일은 어느 때보다 많이 했다.

잠시 쉬는데 함께 일하는 친구가 나에게 농사에 대한 자기만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원영씨, 복싱 알아요?”
“그럼요. 알죠.”
“농사는 복싱과 같아요.”
“무슨 말이죠?”
“복싱은 오랫동안 하는 운동이예요. 처음부터 너무 많이 움직이면 빨리 지쳐요. 매 회마다 조금씩 조금씩 끌어올려야 끝까지 갈 수 있고 이길 수 있어요.”
“오~ 그래요!”
“내가 일해 보니까 빨리 하면 빨리 지쳐요. 하루에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하려면 자기 체력에 맞게 천천히 해야 힘들지 않아요. 내가 빨리 해 보니까 천천히 일한 날과 별로 차이가 없었어요. 이게 내 비법이예요.”

권투는 12회까지 하는 경기다. 권투선수는 체력 안배와 몇 회까지 방어해서 상대선수의 힘을 뺀 후 공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링에 오른다. 농사도 1년 12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장기전이다.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 체력을 안배해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친구의 마지막 조언을 마음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야 할지 계획해야겠다.

덧니: 저를 7개월 동안 거두어주신 김준권, 원혜덕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원영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인 삶을 추구하는
포천 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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