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사회복음의 선창자, 왈터 라우센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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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사회복음의 선창자, 왈터 라우센부쉬
  • 김신윤주
  • 승인 2016.07.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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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7월25일, 목사, 신학자

“사회복음은 구원의 오래된 메시지이지만, 널리알려지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주의적 복음은 우리에게 죄로 가득찬 인간의 마음을 깨닫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넘쳐나는 사회구조의 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왈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 1861-1918)는 북미 사회 복음의 가장 선도적인 신학적 주창자였다. 이 세기적인 운동은 사회정의의 문제와 개인 신앙의 내용을 서로 관련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861년, 뉴욕주 로체스터의 독실한 독일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라우센부쉬는 성직자가 되는 것외에는 다른 야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1886년에 그는 첫번째 담당교구를 배정받아 뉴욕시티의 헬스키친지역에 있는 제2독일침례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곳은 비좁고 비참한 주변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지역이었다. 그가 직면한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절망의 광경과 냄새는 그의 마음에 전형적인 그리스도교 경건주의 메시지에 대한 불만을 남겼다.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구원, 개종 또는 예수님 안에서의 단순한 믿음등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였다.그는 점점 자신의 목회활동을,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세상에 대하여 교회가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깨우는 일로 확장해갔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라우센부쉬는 전통적인 형태의 자선조직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오늘날 복음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만연한 가난과 불의를 책임지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접근을 위한 신학적 근거를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891년 그는 돌연 신학적 돌파구를 경험했다. 예수님이 선포한 주요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의 성경적 상징을 재발견한 것이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개인의 신앙과 사회적 변혁을 포함해서 모든것을 포괄하는 주제였다.  교회와 세상을 결부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했다.

하느님 나라는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도전에 관한, 진실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교리’였다. 이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태어났다.

“예수님이 가르친 모든 것의 요지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이것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는 이것을 위해 죽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누구든 복음을 통하여 한번 이것을 알게되면 다시는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을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요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잊혀지고 또한 가려져 있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 개인의 구원 또는 교회와 동일시 되어왔다. 비록 이 모든 것들과 실제로 관련이 있다하더라도, 그 나라는 더 광대하고 더 앞서 있으며 급진적인 궁극의 무엇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세상과 하느님이 계획한 세상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대립을 나타낸다고 했다.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줄이려는 사람들에게 라우센부쉬는 반대로, 예수님의 진짜 메시지의 반환을 촉구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완전한 하느님 나라의 몰락은 예수님의 몰락입니다.” 그는 썼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예수님의 목소리에는 충분히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

라우센부쉬의 생각은 <사회질서의 기독교화>와 <사회복음을 위한 신학>를 포함한 몇 권의 책에 담겼다. 그는 널리다니며 강의를했고, 1897년에는 로체스터 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은 개신교 교단에 깊고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교인의 사회의식의 발전과 수많은 진보적 조직들을 위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사회복음을 믿는 사람들과 다른 자유주의적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가혹한 시련이 되었다. 현대문명의 진보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낙관론은 죄의 실재와 인간의 부조리에 부딪혀 좌초한듯 보였다. 그러나 라우쉔부쉬는 사실 그런 환멸에 대해서 그의 수많은 동조자들처럼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사회적 진보의 행진과 절대로 동일시 하지 않았다.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의 논쟁처럼 그가 죄의 실재를 망각한것도 아니었다. 그의 위대한 공로는 최근에 교회의 언어로 다시 표면에 떠오른 “사회적 죄”라는 용어를 깨닫고 명명백백하게 밝힌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우센부쉬의 메시지에 대한 공감은 군국주의적 애국심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사그라져갔다. 1918년, 그는 이렇게 썼다. ”1914년부터 세상은 증오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나는 살아 생전에 다시는 행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 예언의 말대로, 그는 같은해 7월 25일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라우센부쉬가, 자신이 전했던 이상들에 대한 환상이 처참하게 깨진 세상에서 죽은 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암시한다. 근거는 없지만 대신에, 그는 그 과업의 거대한 규모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사실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절대로 완전한 삶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 아무리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그것은 늘 완전한 사회질서로의 접근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나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을 향한 모든 접근은 가치가 있습니다.“

 

[원서] <모든 성인-우리시대를 위한 성인, 예언자, 증인들>(All Saints), Robert Ellsberg, crossroad, 1997 

[역자] Shine Shin-Kim, 김신윤주 수산나.
아티스트, 작가. 2013 년 뉴욕에서 대중참여예술인 원하트 프로젝트 시작,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 인권, 사회 정의 차원에서의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루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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