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가톨릭일꾼에서, 나는 이미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상태바
도로시 데이 "가톨릭일꾼에서, 나는 이미 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9.11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도로시 데이의 책을 읽고 그와 말을 나누었거나, 혹은 그의 장서들을 보고 그가 가까이 두었던 책들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그의 특별한 삶의 여정에 가장 의미가 깊었던 작가들이 누구인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성서, 히브리의 예언자들 그리고 불의 앞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도덕적인 분노, 그리고 물론 그분의 지상 사명에 대해 결코 묵상을 멈춘 적이 없었고 자신들의 삶의 모범으로 여겼던 예수와 함께 열정적으로 살았다. 또한 도로시 데이는 자주 특정한 성인들, 아빌라의 데레사와 리지외의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 그리고 많은 곤경에 대해 영감을 얻게 해 주었던 시에나의 카타리나에게 자주 돌아섰다.

소설가들 또한 이미 언급된 것처럼 그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특히 19세기의 소설가들,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톨스토이의 영향은 매우 뚜렷했다. 그는 디킨스가 독자들에게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노력한 것,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적인 열정과 철학적인 예민함, 톨스토이의 마음과 정신의 광대함을 사랑했다. 또한 그는 고통받고 난국에 처한 인간에 대해 약간 일그러졌지만 부드러운 입장을 지닌 체홉도 사랑했다.

그는 자신도 말했듯이 책에 허기지고 열병에 걸린 독서광이었다. 이러한 문학적인 자질을 그는 혼합된 축복으로 보았다.

“타말이 어렸을 때 나는 함께 지내는 여가시간 내내 책들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가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친구 하나는 술집을 지나갈 때 자신의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는데, 친구에게 그 심정을 알겠다고 말했지요. 난 책방과 도서관을 지나갈 때에도 눈을 감아야 했어요. 조심하지 않으면 책읽기에 정신 없이 빠지고 주말도 잃어버릴 지경이었지요.”

그렇지만 내가 “영적인 동반자들”이라고 할 때, 이런 독서 습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금세기(20세기)에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덕에 충실하고 신봉하는 이상을 매일 지적인 능력으로 충실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가 무척 흠모했던 작가들은 보통 그들의 일생을 환대의 집에서 보냈던 것이 아니다. 그와 피터 모린이 시도했던 실존적 삶에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가톨릭주의를 연결하도록 도와 주었던 친구 자크 마리탱도 도로시 데이 같이 한 발은 저술과 사상의 세계에 또 다른 한 발은 무료급식, 농촌 공동체, 피켓시위에 참여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가톨릭일꾼> 신문에 도로시 데이가 썼던 정규 컬럼인 “순례의 길에서”는 지식인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 계층을 위해서였다.

한번은 도로시 데이에게 다음 세계에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과 이 세계에서 그가 느꼈던 영적 동반 관계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대통령과 장군들, 배우들, 부자와 천재들, 온갖 유형의 천재들을 높이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어떤 식으로든지 성공한 사람들을 우러러 보도록 주입되었지요. 아마도 중요한 소설이나 시,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 인정을 받는 까닭도 그들이 무엇인가 특별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뛰어난 사람들에게 경탄합니다. 소설을 읽고 작가를 만나고 싶다던가, 그 사람처럼 나도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부러움이나 두려움을 느낍니다.

순수한 감탄은 오래가지 않지요. 그러나 당신이 누구와 함께 다음 세상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나는 공장노동자도, 농부도 아니지만, 읽거나 쓰거나 교회에 있을 때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공장노동자이고 농부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가톨릭일꾼이 되라고 초대되었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지성인이나 가톨릭 문인들 혹은 가톨릭 사회운동가나 가톨릭 혁명가들 혹은 가톨릭 정치행동그룹이 아닙니다.

피터는 ‘노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하여 손과 가진 힘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곡식을 심고 추수했습니다. 그는 내가 노동자들에 대해 말만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나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나 그들의 교사 혹은 그들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내 자신을 노동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한번은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옆에서 점심을 들고 있던 몇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들은 방에 왜 십자가나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물건들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우리가 하느님께 많이 기도 드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친절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 그분이 별로 좋은 일을 하시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이냐고 내가 물었지요. 그들은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했어요. 그는 또 이렇게 말했지요, ‘자 보세요, 우린 이렇게 여기 함께 있어요. 그리고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서도 우린 함께 있을 겁니다.’그리고 나서 나에게 그렇게 될 것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질문에 내가 대답하길 원하느냐고 되물었지요. 그가 질문을 정확하게 다시 해서 무언가 말이 되는 대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우리를 한곳에 있도록, 그때 그곳에 앉아있던 우리 모두를, 그리고 식사를 하러오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인가 ­ 아니면 우리를 천국의 한쪽으로 보내고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곳으로 보낸다고 내가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몇초 동안 그의 질문을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라 말할까 꼼짝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또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답변했지요. 그는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따로 떼어 내어 이곳에 있게 했으니 천국에 가서도 모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가 한데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난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죽을 때에 난 그 사람의 말을 기억할 것이라고 믿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도록 하느님께서 그 날 도우신 것이라고 믿지요. 피터도 나한테 다음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 사실을 확신했어요. 난 피터처럼 확신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큰 가톨릭일꾼 가족으로 있게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친척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는 사람들은 주고 주는 사람들은 받게 되는 일가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도로시 데이는 그의 삶 초기에 별로 가까이 느끼지 않았고 연민도 별로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함께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제 “그들은” 그에게 특별히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젊었을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흥미롭고도 새로운 일을 하며 지낼까 궁금해했어요. 새로운 계획과 최신의 생각들로 꽉차서 재미있어 했어요. 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모든 것을 읽고 싶었어요. 새롭고 흥미로운 것 이 두 말은 항상 함께 있었지요. 그런데 가톨릭일꾼 가족을 만들면서 우리 모두는 똑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이런 삶에서 새로운 회전들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누구를 만나고 또 새로운 누구누구를 만나리라고 희망하지 않지요. 우린 이미 소중한 존재들을 만났습니다 ­ 주님과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상기시켜준 교회의 성인들을 만났습니다. 또한 우리는 요셉의 집이나 다른 환대의 집에서 서로 만났으며, 우리 각자가 찾기를 희망했던 모든 것을 함께 있음으로써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은 함께 모두가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동족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