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손님에게 도시락 대신 집밥을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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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손님에게 도시락 대신 집밥을 대접하고 싶다
  • 서영남
  • 승인 2021.08.14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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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하느님의 대사들이 민들레국수집의 손님들입니다. 
왜냐면 피터 모린께서 거지들을 "하느님의 대사"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대사들인 이 사람들을 발가락의 때처럼 여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대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우리 손님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손님에게 온갖 욕을 얻어먹고, 멱살을 잡히고, 얻어맞았습니다. 
끝도 없는 술주정에 시달릴 때,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우는 것을 말릴 때,
우리 손님들이 하느님의 대사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자기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걱정합니다. 
더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빵 하나 사서 나눠 먹습니다. 
힘들게 막노동으로 번 돈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눌 줄 압니다. 
작은 도움인데도 정말 고마워합니다. 
욕심도 없습니다. 
담배 한 개비 드릴까요? 물어보면
자기는 꽁초 하나 있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 손님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대사”들입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제대로 식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일반 식당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무료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도 손님들에게 식사를 도시락으로 대체한지가 2020년 2월말부터입니다.  벌써 1년 6개월 째 우리 손님들은 도시락꾸러미로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자원봉사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민들레 식구들이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해서 오전 11시에 나눠드렸습니다. 그리고 늦게 오는 분들을 위해 오후 5시까지 기다리면서 어떻게 해서든 한 끼 식사라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노숙 손님들이 식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공장소의 정수기도 방역을 위해서 더 이상 식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500ml 생수를 한 병씩 담아드렸습니다. 여름에도 생수를 담아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갑게 해서 드리면 참 좋은데 그냥 드리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날 동네 시장에 나갔다가 생선가게 앞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얼음에 재워둔 생선처럼 생수를 얼음에 채워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생수를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서 손님들께 나눠드릴 수 있습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다시 포장마치에 어묵을 끓여서 대접할 생각입니다. 요즘은 대나무 꼬지에 어묵이 끼워져서 판매가 되기 때문에 어묵조리기에 육수를 넣고 끓여내기만 하면 됩니다. 도시락을 나누기 전에 손님들이 기다리면서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엄청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러다가 어묵을 감당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제한 없이 손님들이 어묵을 드시도록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거의 네댓 개로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뜨거운 어묵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어묵 대신 냉커피로 바꿨습니다. 아침마다 손님들이 달달한 냉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놀랐습니다. 보통 대여섯 잔은 마십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이에 아이스크림이나 시루떡 또는 옥수수, 감자 등을 나눕니다.

내일부터는 지난 일 년 반 동안이나 오로지 도시락만 드신 손님들을 위해 오후 3시쯤에는 원하는 손님들에게 특별한 대접을 할 계획입니다. 매일 밥과 국과 몇 가지 반찬을 마련해서 집밥처럼 대접하는 것입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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