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온다는 소문이 바람보다 먼저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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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온다는 소문이 바람보다 먼저 들이닥쳤다
  • 장진희
  • 승인 2021.08.07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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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 시편
사진=장진희
사진=장진희

두번째 답시가 왔다.
누구든 시를 쓰면 좋겠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25년 전쯤에 귀농했을 때 돈과 문명의 이기들이 징글징글해서,
돈 안 벌고 안 쓰고 되도록 문명의 도구들을 적게 쓰자,
묵언의 약속처럼 이웃들과 그렇게 살았다.
여전히 땅에 코 박고 농사 짓는 시인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다 실패하고 전화로 받아 적으란다.
해거름에 강아지 데리고 마실 갔던 죽곡면소재지 광주수퍼 앞에서 캔맥주 하나 마시고 있다가 쥔네 할매한테 메모지 좀 달라 했더니
언제 적 공책인지 '새마을일기'장을 내어준다.

여우섬

-권영덕

백중사리였다
태풍 온다는 소문이
바람보다 먼저 들이닥쳤다
달무리는 소용돌이치며 홀리고
찢어진 돛폭의 파도가
우우 몰려들며
서로 어깨를 맞부딪혀
밤짐승의 눈빛 같은 섬광이
물결 따라 시퍼렇게 꿈틀댔다

밀려와 쌓인 달빛을 받고
그는 혼자 서 있다
조약돌을 멀리 멀리 던진다
모래 위에 뭔가를 쓴다
물결은 들며 쓰며 지워버리고
그는 물거품처럼 웃는다
부싯불마냥 깜박이는 담뱃불은
위태로운 구조신호인지도 모른다
그는 난파한 한 척의 배인지도 모른다

그가 천천히 옷을 벗는다
물결 마주하며 바다로 들어간다
보름달에 이끌려
바다에 몸을 맡기고 출렁이다가
마침내 먹빛 섬으로 떠올랐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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