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면 감옥은 참으로 서러운 곳이 됩니다
상태바
한여름이면 감옥은 참으로 서러운 곳이 됩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8.07 1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을 오는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더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 좀 푹 자고 싶다.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 없어 미칠 지경이다. 샤워라도 한 번 하고 잘 수 있으면 좋겠다. 노숙하는 사람들은 맨몸으로 고스란히 더위를 겪고 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자기만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전철을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랍니다.  

첫 번째 사진, 옷이 땀에 흠뻑 젖은 수남(68세) 씨는 별이 15개입니다. 호세아입니다. 사실 수남 씨는 자기 생일도 모릅니다. 고아원에서의 기억이 전부입니다. 고아원에서 이름을 지어줬고 생일도 추정해서 호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8년 전 한겨울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해서 연안부두에서 노숙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굶다가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왔습니다. 감호소에서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서 연안부두 어느 건물 옥상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청송에 있을 때 소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방 한 칸 마련해 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거들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시세끼 밥 먹을 수 있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왜 다시 교도소 갑니까? 그 후 폐지 줍는 일을 했습니다. 폐지 줍는 일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수남 씨는 밤중에 작업을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닫을 무렵에 와서 저녁을 먹고, 밤중에 먹을 도시락을 싸 가곤 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으니 그토록 자주 들락거리던 교도소를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밤새 폐지를 줍는 일을 해도 몇 푼 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탁을 합니다. 자기는 별이 열다섯 개나 된다고 합니다. 보통 징역을 일이 년 정도 받았다고 합니다. 교도소에서는 항상 개털이었다고 합니다. 또 법자(법무부에서 주는 것만 받을 수 있는 수용자를 법무부 자식이라고 해서 법자라고 합니다)였답니다. 출소할 때마다 교통비마저 없어서 마음 착한 교도관이 도와줘서 차를 탈 수 있었답니다. 그때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단팥빵이었답니다. 폐지 주워 모은 돈 십만 원을 제게 주면서 단팥빵 사서 청송교도소 면회 갈 때  감옥에 있는 형제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답니다. 수남 씨가 폐지를 주워서 십만 원을 벌려면 몇 날을 일해서 모아도 쉽지 않을 큰돈을 몇 번이나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수남 씨가 몇 년 전 어느 날 그동안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젠 65세가 되어서 노인회관에서 무료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노인회관의 무료급식이 중단되었다고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도시락꾸러미를  받아갑니다. 요즘은 폐지를 주워도 돈이 안 된다고 합니다. 미안하지만 쌀을 좀 나눠달라고 합니다. 이제 곧 민들레국수집은 여름휴가로 교도소 방문 여행을 시작할 것이고 자기는 굶을 수가 없으니 밥을 해 먹을 수 있게 쌀을 달라는 것입니다. 도시락꾸러미를 드리면서 쌀도 10킬로 한 포를 드렸습니다.

코로나 19가 4단계로 되면서 교도소 면회가 난감해졌습니다. 작년에도 코로나 19로 힘들었지만 여러 곳의 형제들을 면회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영치금을 나누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여름을 보내는 어느 형제의 편지입니다.

한여름이면 감옥은 참으로 서러운 곳이 됩니다. 좁은 방에 여럿이 갇혀 있으면 옆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만 보냅니다. 끄는 것이 차라리 좋습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곳은 창살이 촘촘히 박혀 있는 작은 창문뿐입니다.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화장지를 길게 찢어서 창살에 매어 놓습니다. 창살에 매어놓은 화장지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봅니다. 부채를 부쳐보지만 땀만 흐릅니다. 저절로 욕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말리는 척 하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두 사람이 징벌방에 가면 오늘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습니다. 표정관리가 어렵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