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배달된 옥수수는 하느님의 개입이며 샬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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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배달된 옥수수는 하느님의 개입이며 샬롬이다
  • 최태선
  • 승인 2021.07.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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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올해도 옥수수를 받았다. 오랜만이다. 오래 전 우리 교회가 휴면에 들어가기 전 헌금을 나누던 시골 교회에서도 옥수수가 왔다. 그때는 요즘처럼 택배가 일반화 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옥수수가 들어있는 자루를 받으러 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했고, 신분을 확인시켜준 후에 그것을 받았다. 그걸 삶아 온 교인들이 나누어 먹는 일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 글을 읽고 매일 찔린다는 분이 작년에도 옥수수를 보내주었다. 그만큼 찔리면 대부분은 돌아서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도 그랬다. 내가 하는 말은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내가 하는 말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살기가 싫다는 것이다. 자신도 없다고 했다. 사실 여기가 분기점이다. 누구라도 이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신앙의 출발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결국 욕망을 좇는 삶 외에는 없다. 복음이란 자신의 욕망이 끝까지 저항하는 그 무엇이다. 결국 믿음에 따라 신앙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돈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돈으로 종교적 구색 맞추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차라리 솔직하게 욕망을 좇는 삶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도 못하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성서는 간음이라고 한다.

어쨌든 또 일 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떠나지 않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래서 누가 만나자는 것이 심드렁해지기까지 했다. 결국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무의미하고 슬픈 일도 없다. 그런데 올해 또 옥수수를 보내온 것이다.

농사를 지어본 나는 수확한 농작물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 특히 농작물을 팔기 위해 지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도 돈은 가히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돈이 될 만한 작물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된다.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는 것이 팔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의 불문율이다.

옥수수는 딴 즉시 삶는 것이 포인트이다.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옥수수를 그렇게 먹는 순간이었다. 밭에서 따자마자 삶아 먹는 옥수수의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소금도 설탕이나 뉴슈가도 필요 없다. 그냥 삶기만 하면 그것으로 이미 천상의 맛이 보장된다. 특히 알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함량미달의 옥수수는 더 맛있다. 그래서 나는 대여섯 알이 박혀있는 옥수수도 버리지 않고 삶았다.

손자를 보고 저녁 늦게 돌아온 관계로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택배가 오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이미 받았다. 그래서 오자마자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수염은 따로 모으는 작업을 했다. 아내에게 물을 올려놓으라고 했다. 소금과 설탕을 넣고 깐 옥수수를 모두 넣고 삶았다. 20분을 센 불에, 20분을 약한 불에 삶은 후 5분 정도 뜸을 들이면 된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옥수수를 까고 삶는 작업을 끝내고 삶아진 옥수수를 먹었다. 옥수수의 당분이 시간이 지난 만큼 사라지긴 했지만 고소한 맛은 느낄 수 있었다.

프로가 아니라면 이런 옥수수를 생산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옥수수는 팔기 위한 농작물이었다. 그런 옥수수를 내게 보낸다는 것은 여간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 고맙고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마운 것은 그렇게 날마다 찔리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아파 화가 나는 날도 있었는데 그래도 뒤돌아서지도 않고, 떠나며 ‘신포도’를 던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굳이 더 찔리지 않아도 그 말이 내내 그 말인 경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읽지 않게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정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적은가. 그래서 나는 뻔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년에도 옥수수를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건 옥수수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이며 내가 쓰는 글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이며 무엇보다 하느님이 우리 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기사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기독교 콘텐츠로 돈 벌려면 '우파 코인' 타는 방법밖에 없어요.(웃음)”

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 글은 우파도 아니지만 좌파도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 읽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확률이 낮다. 더구나 나는 내 스스로 많은 독자들이 생기는 것을 피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진보적인 분들은 이미 자유롭다는 말도 했다. 이것으로 이분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좌파와 우파 사이 어느 곳이다. 아마도 좌파 쪽으로 조금 기운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을 읽으려면 아예 그 선상에서 이탈해야 한다. 그래야 내 글을 읽게 되고 읽어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다.

전에 말한 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은 제삼의 길이다. ‘하느님의 개입’이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라는 말을 잘도 사용하면서 막상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의 여지를 없이 만들고 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 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맘몬의 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좌파든 우파든 맘몬의 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자 결론이다.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은 결국 힘없는 의지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들으면 매우 연약해서 빌빌대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철같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도 쉽지 않다. 무방비가 된다는 것처럼 두려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 무방비 속에서만 인간은 하느님의 개입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즈카르야서에 나오는 야훼의 불 성곽(성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야훼의 불 성곽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즈카르야와 같은 선지자, 혹은 야훼께서 보게 해주실 때가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불 성곽 안에서 사람들은 샬롬을 맛보며 야훼 하나님은 그 안에 사시면서 영광을 드러내신다.

나는 내게 배달된 옥수수 역시 하느님의 개입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개입이 없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난 이십여 년 간,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경매의 과정을 거쳐 내 집에서 쫓겨난 이후 오직 야훼의 불 성곽만을 신뢰하며 살고 있다. 물론 혹독한 가난의 처절함과 쓰라림을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다. 거기서 가족은 정말 시리고 고통스러운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샬롬을 경험했다. 샬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충분히 배부르며 무엇보다 안전하다. 무슨 일이 닥쳐와도 하느님을 쳐다보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젖먹이 갓난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쓰는 글들은 모두 그런 과정 속에서 배우고 알게 된 내용들이다. 샬롬과 마찬가지로 내 글은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개입이라는 초자연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일상을 경험하면 우리는 비로소 그분의 백성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흔들리는 세파 속에서 안식 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 화려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내용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 길에 들어서면 우리는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고 그분과 같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알게 된다. 거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느님을 지켜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

내게 배달된 옥수수는 하느님의 개입이며 샬롬이다. 나는 이렇게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는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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