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고무 손가락, 금붙이 같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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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고무 손가락, 금붙이 같던
  • 이슬
  • 승인 2021.07.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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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이야기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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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쫓기듯 일하고 싶은 때 식당 보조 일을 시작했다. 안 해 보던 일이라 몸을 많이 고단하게 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매일 꿈도 꾸지 않는 달콤한 잠이 기다려졌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 지났을 때였다.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고무장갑 손가락이 잘려나가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정말 큰일이다. 설마 음식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설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몇 번을 두리번거려도 아무데도 없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을 인사드리고도 나타나지 않으니 세상에 이렇게 뾰족한 가시 방석은 따로 없다. 오랜 시간 주방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신 분들이라 “괜찮다. 괜찮아. 어디에서 금방 나타날 거다. 여기서는 흔한 일이야.” 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셨지만 주방은 점점 더 얼음같이 차갑고 쨍쨍한 긴장감이 돈다.

노란 고무장갑 이였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주 메뉴가 간장불고기라서 고기 색도 점점 노래지는 것 같고 함께 넣은 야채에 양배추와 양파도 볶을수록 자꾸만 더 노릿해져 가는 것만 같다. 조리사님이 조리 삽으로 몇 번을 뒤적여 봤는데도 잘린 고무장갑 손가락 같은 것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침묵이 흐른다. 더 아무 말씀 않으셨지만 아무래도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고무장갑 손가락은 나와야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머릿속에는 이 다음에 펼쳐질 일들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몰려든다. 손님 밥그릇에서, 손님 입 안에서 그것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화가 나고 불쾌한 손님의 표정과 어쩌면 식당 안이 떠나가라 큰 소리도 오갈지 모른다. 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위에 또 그 위에 줄줄이 있는 상사들의 책임까지 생각해보니 아,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가끔 학교 급식실에서, 식당에서 나도 그랬다. 머리카락이나 벌레, 이물질 같은 것들이 나오거나 작은 조각의 계란 껍질이라도 씹는 날이면 실수 하나 없는 무척이나 깔끔한 사람처럼 ‘에고 조심 좀 해주시지.’ 하면서 잠깐 입맛이 사라지거나, 잠깐 위생상의 문제를 의심하거나 또 잠깐은 예민해져 있었던 모습이 화끈거린다.

내가 냈다는 밥 값 때문일까? 내가 손님이라는 역할 때문일까? 어째서 그 자리에서 사람이란 건 ‘그래, 그럴 수도 있지.’가 쉽지 않은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이가 그랬다.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그 사람과 나의 위치가 같아졌을 때에야 진심도 전해진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그 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마음이 그러 했었구나.’ 어머니의 진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식당 주방에 들어서서야 그런 일은 너무나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하시는 분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기도 하며,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그 분들은 충분히 안절부절 못하고 충분히 곤란하게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진심을 얼마나 어떻게 알면서 다 안다고 해 온 걸까?

나중에 잘린 고무장갑 손가락은 설거지 중에 큰 채반을 뒤로 뒤집으면서 나왔다. 채반 끝 모서리에 꼭 껴서는 덜렁덜렁 매달려 내게 메롱이를 하고 있는데, 발견하는 순간 “여기 있어요. 찾았어요. 찾았어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금붙이 하나 쯤 찾은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버렸다. 모두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뒤로도 ‘정말,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가끔 주방에서는 그렇게 금붙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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