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눈감는 사랑처럼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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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눈감는 사랑처럼 떨고 있다
  • 장진희
  • 승인 2021.07.18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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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 나오는
뽄때 시인
변비 시인.

설사 시인이 백 편 가까운 시를 보내는 동안 단 한번도 답시를 보내지 않았다.
오늘 불쑥 찾아갔더니
막걸리구락부 음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시인이 무언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새해 시작된 무렵에 쓴 걸 보니 작년 이후로 안 만난 모양이다.

집에 와서 보니 젊은 날 썼던 시 한편이 적혀 있었다.
허락도 없이 여기 올린다.
내 백 편 시를 떼어먹었으므로.

 


깻대를 태우며

-권영덕

약수터 갔다가 돌아오는 길
밭두렁에 버려진 깻대를 태운다
젖은 깻대는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고
성냥을 그을 때마다 그리운 얼굴들이
잠시 흔들리다 사라진다
얼마나 따스한가
바람을 막는 손바닥에 쥐어지는
한잎 낙엽 같은 이 외로움
젖은 깻대를 던져넣을 때마다
치솟아 달려드는 연기는 두눈을 후비고
나는 매운 눈물을 글썽인다
타올라라 타올라라
물기에 젖은 나날아
매워 눈물을 닦으며
자꾸 깻대를 던져 넣으면
어쩌다 털리지 않은 깨알이 익는 내음
타올라라 타올라라
관 속처럼 어두운 청년아
타오를수록 가뭄 타는 열매처럼 나는 익어가고
산비탈에 성큼 내려선 어둠이
안개가 주위를 천천히 감싸는 동안
불길은 잦아들어
마지막 눈감는 사랑처럼 떨고 있다
산다는 일은
젖은 가슴에 불 지피면서
등 뒤로는 시린 추위를 견디는 일이었고
때로는
이처럼 재가 된 가슴의
남은 불씨를
뒤적이는 일이었다
먹빛 산위로
그렁그렁한 초저녁 별이
하나둘 눈 뜬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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