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복음을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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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복음을 믿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 최태선
  • 승인 2021.07.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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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동성애를 허락하면 아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내겠는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어 발효되면 정상적인 가정이 붕괴될 것이다.
당신이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를 맞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다.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 때는 알 수가 없다. 벌어지지 않은 일은 그것이 실제로 벌어질 때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또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이 일반화되기까지는 더 많은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상상에 의해 어떤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도 논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이런 유의 토론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치 현실처럼 들이댄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자신은 상상을 현실로 여기며 한껏 분노하게 된다. 결국 그 분노는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킨다. 결국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개신교의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예수님의 행적을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들 나름의 논리는 계속해서 펼쳐지지만 결국 이들은 자신의 주장 외에는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금 공감하게 된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결국 그런 사람들과는 만날 수가 없게 된다. 괜히 만나 서로 상처 주는 일을 피하는 일이 오히려 현명하다. 예수님이 할 수 없이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수준에 이르러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해왔는가. 그러나 번번이 개신교의 압력으로 무산되었다. 어쩔 수 없이 발의를 하고도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국회의원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직을 걸만큼 그것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런데 어느 하나에 매어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파국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 애초에 그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가진 사고도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것을 관철시키려 할 만큼의 열정이 결국 부족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시도들이 길어지면서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가 교회의 입장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였고, ‘동’자와 ‘차’자만 들어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혐오와 배제와 차별이라는 기재가 교회의 디엔에이가 되었고 결국 그것은 교회 자체를 본질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교회로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일 자체만을 반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것에서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교회의 사고가 되어 교회를 결국 복음과 결별하게 만들었다.

이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용서나 무조건적인 환대, 혹은 부채의식이 없는 선물(은혜)과 같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완전히 망각하거나 오히려 부정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는 단순히 어떤 한 사안에 대한 의견제시가 아니라 복음 전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교회의 방어기제가 된 것이다.

테레사 수녀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 곁에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사실 촌철살인과도 같은 질문이다. 그의 이 질문은 상대방에게 그리스도인 됨의 본질에 관해 묻는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의 곁에 가난한 사람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리스도인들 곁에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자신과 무관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실 그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며칠 전 일이다. 동네 편의점 앞에서 깡소주를 마시는 분을 몇 번 보았다. 그분의 차림으로 보아 노숙자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깡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보아 형편이 좋은 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마침 어떤 부부가 그분에게 그렇게 날마다 깡소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부부에게 다가가 깡소주를 마시는 분을 아시느냐고 묻고 혹 그분이 노숙자 선생님이 아니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분이 웃으며 이분 노숙자가 아니고 집도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교회의 처소를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동사무소 복지담당 공무원을 찾아가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도움이나 보호가 필요한 분들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소개를 받아도 막상 찾아가보면 그분들이 그렇게 어려운 분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움도 생계와 관련된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형편이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가난한 사람을 곁에 두려고 노력을 이어나간다. 집에서 생기는 알루미늄 깡통을 모아두었다 그것을 주으러다니는 노인들을 만나면 집으로 모시고 와 그것을 드린다. 그것을 드리면서 대화를 하면서 다른 도움이 필요 없는가도 살핀다. 그것도 아니라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고 돈을 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구걸을 하거나 돈을 건넬 수 있는 노숙자 선생님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쉽게 가난한 분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테레사 수녀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가난한 분들과의 교제나 만남이 있지는 않다. 대신 나는 언제나 그분의 질문을 내 가슴에 새기고 산다.

“나는 나의 직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을 것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진리는 오히려 ‘믿을 때까지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데윗 존스(Dewitt Jones)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나는 데윗 존스가 하는 말에서 복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생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진리는 믿을 때까지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는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도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 복음을 믿는다면 혐오와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용서와 포용과 환대가 그들의 삶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을 입에 담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나는 얼마든지 ‘이성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강간이 일상화되었는가.’와 같은 그 사람들이 하는 상상에 대한 나의 상상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상상은 다른 상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엉뚱한 상상력 싸움으로 현실을 왜곡할 필요가 없다. 다툴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맞는다면 우리는 모든 사회적 장벽과 막힌 담을 허무신 그리스도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모든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나는 동성애자인 분들과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 나는 무슬림들과도 친구가 되고 싶다. 가난한 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와 평화 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싶다. 이런 것들이 바로 믿음의 문제들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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