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모두가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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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모두가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 서영남
  • 승인 2021.07.1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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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겨우 여섯 사람이 앉는 식탁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열 명이 간이의자에 앉아서 식사할 수 있도록 조금 넓혔습니다. 그 다음에는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여섯 개를 놓은 지금의 식당이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스물 네 명이나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식당이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20명 정도가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면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라면 도시락을 나누는 것은 그만하고 노숙 손님들에게 제대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민들레국수집이 자리 잡고 있는 화도고개 언저리는 재개발로 뒤숭숭합니다. 특히나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있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재 미문의 일꾼교회)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있습니다. 노숙 손님들도 걱정스럽게 물어봅니다. 민들레국수집이야 월세로 빌려서 하고 있기에 집주인이 재개발을 한다고 떠나라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재개발이 되어서 4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 숲속에서 민들레국수집을 유지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언제나 민들레국수집은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있는 곳이면 괜찮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가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도 그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돈이 많지만 우리 손님들은 돈 구경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을 수 있는 동전 하나만 생겨도 횡재했다고 자랑하는 손님도 있습니다. 손님들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 드리면서 백 원을 받겠다고 하면 외상이라고 합니다.

우리 손님들이 꼭 돈이 필요할 때는 제게 빌려가기도 합니다. 많아야 일이만원 정도 빌려줍니다. 그러면서 언제 갚을 것인지 말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꼭 받아 놓는 약속이 하나 더 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밥은 먹으러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멋모르고 빌려주었습니다. 겨우 이삼천 원을 빌렸는데 갚을 날이 지나면 국수집에 밥을 먹으러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인천 역 근처로 찾으러 나가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돈을 몇 푼 빌려간 손님은 거의 대부분 갚습니다. 아니 어떨 때는 선물을 가져 오기도 합니다. 빌려간 돈보다 몇 배 많은 선물인 경우도 있습니다. 만 원을 빌려 갔는데 갚을 때 돈과 함께 20킬로그램 쌀을 한 포 가져오기도 합니다. 라면 한 상자를 들고 오기도 합니다. 박카스 1통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돈을 주면 술을 사 먹거나 쓸 데 없는 데 돈을 쓴다고 걱정합니다. 노숙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정말 필요합니다. 

며칠 굶었다고 합니다. 라면 하나 끓였습니다. 식은 밥 조금 그리고 김치 한 접시를 차려서 요기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63년생 남자 어른인데 주머니에 달랑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뿐입니다. 송현초등학교 나왔습니다. 짜장면 집에서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결혼해서 아주 잠깐 행복했는데 곧바로 이혼하고는 지금껏 혼자 살았답니다. 음식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이젠 늙어서 더는 일도 못하게 되었답니다. 쪽방 월세 보름치를 내지 못해서 여인숙에서 쫓겨났답니다. 나흘 전에 칼국수 한 그릇 먹고 4,500원 내니까 거스름돈으로 동전 두 개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찜질방 표 한 장 그리고 이천 원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찜질방에서 지내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은 도와주겠다는 말에 질겁합니다. 도와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모르는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오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오래 전에 주헌 씨는 제게 심각하게 물어봤습니다. 왜 자기를 도와주는지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멍텅구리 배에 팔아먹으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그제야 안심을 했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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