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한 일도 독선으로 끝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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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한 일도 독선으로 끝날 수 있어요."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7.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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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도로시 데이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책과 사상에 관심이 많았으나, 삶은 결국 매일의 모든 시간을 어떤 도덕적인 바탕을 형성하여 살아가는지에 따라 평가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편안하고 좋은 교육과 중간층의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자유의지로 선택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그는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 주변에서 살기로 선택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가톨릭일꾼공동체의)은 어느 한 세계에 살면서 또 다른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의 환대의 집들은 소위 협력자들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들을 의미한다(도로시 데이와 동료들은 항상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하고 우월성의 의미를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이해하도록 키워진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이 점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환대의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일꾼들과 손님들의 목표가 결코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39년에 도로시 데이는 「환대의 집」이라는 책을 발간했고 그 속에서 가톨릭일꾼공동체의 초기 삶에 대해 쓰고 있다. 그것은 가장 절박한 가난속에 있는 사람들에 가까이 사는 것이었다. “남자들을 위하여 집이 마련되어야 했다 ­ 어떤 사람들은 센트럴 파크에서 자고 있었다”고 그는 이 책의 서언에서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톰킨스 스퀘어 근처의 한 아파트를 월세 8불씩 주고 빌렸는데, 쥐가 득실거리고 난방도 없으며 아주 더러워서 노숙자들도 꺼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군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쫓겨나고 있었다. 우리는 또다른 아파트를 찾아야 했고, 그들이 보조금을 타도록 도와주어야 했으며 손수레를 빌려서 그들이 이동하도록 도와야했다.” 그리고 여성 노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도 이런 피난처가 마련되어야 했다. 이 때에 도로시 데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옷이 필요한 이웃들이 우리에게 왔고 그래서 친구들과 독자들에게 옷을 달라고 청해야 했다.”라고 그는 기억한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했으며, 글을 썼고 자료들을 뿌리기 위하여 밖에 나가 시위를 했어요. 또한 복사한 팜플렛을 들고 나가기도 했으며 수많은 서신에 답장을 하고 전화를 해오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했지요.”

 

어떻게 수많은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들이 유지되었는가를 물을 때마다 도로시 데이는 1930년대 초기에 널리 만연되었던 가난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터와 나는 사람들이 거리 모퉁이에 서 있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어요. 우리는 당장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지요. 우린 국가가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게 되면 ­이미 한 걸음은 떼었고 나는 주님이 우리에게서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많은 발걸음들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많은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230개의 환대의 집들이 있고 여기에는 몇 명으로부터 150명까지 있는 집도 있어요. 또한 개별적으로 자발적 가난과 애덕 활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관심 있는 독자들이 만드는 “기초세포” 같은 작은 방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집들이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어서 지금 하루에 약 5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요. 뉴욕시만 하더라도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식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파업 때는 노동자들에게 급식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러 나갔습니다. 우리는 전국의 온갖 모임에서 노동자들, 실업자들, 조직된 사람들과 비조직된 사람들, 학생들, 교수들, 신학생들, 사제들과 평신자들에게 말해왔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항상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도록 격려하였다. 「환대의 집」 책에서 데이는 전국의 가톨릭일꾼운동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물론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환대의 집에 잠시라도 머무는 가장 진지한 결단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감명을 받고 다시 학교나 일터로 돌아갔지만 나름대로 도우려는 결심을 갖고 돌아갔다. 어떤 이들은 자원봉사자로서 일을 하는데, 주로 음식을 준비하거나 나누고 옷을 분배하는 일을 한다. 어떤 자원봉사자들은 더 가까워져서 가톨릭일꾼 공동체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되기도 한다. 즉 이런 이들은 섬김, 기도 그리고 성찰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1954년 도로시 데이는 그의 나이 57세 때에 그리고 아직도 매우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을 때 나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계속되는 공동체 생활에 대해 주저하는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일꾼공동체를 방문했었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런 후 그와 함께 일하기 위하여 내 의학 공부를 그만둘 수 없다고 미안함을 느끼며 편지를 보냈었다. 그는 답장으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환대의 집들은 우리처럼 손님들과 한데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를 방문하러 오는 다른 사람들, 우리와 함께 먹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며,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부적절 하다든가’, ‘이기적’이라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에 참여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감정에 대한 데이의 응답은 1971년 지금, 뉴욕시의 요셉의 집에서 녹음하며 다시 들을 때에 더 정리되고 설득력을 갖고 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 때문에 불행하게 느끼고 오해를 받으며 잘못 비난을 받는다면 결국 우리가 죄를 짓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를 따르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길이 가야할 길이라고, 있어야 할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여기에 오는 학생들과 항상 말하고자 합니다. 특히 이곳에 와서는, 이곳에 머물고 싶고 이곳에서 너무나 일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고 말하거나 버틸 힘이 없고 또는 자신들이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머물 수가 없다고 말하는 학생들과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계속 듣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삶 ­ 요셉의 집 같은 환대의 집에서 살지 않는다고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이곳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피곤하거나 다른 사람과 문제가 일어날 때 긴장이 감돌고 긴 기도도 이 긴장을 없애주지 않을 때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사람이 올 때 환대의 집은 우리쪽의 약간 단정하고 사랑에 찬 노력만 빼고는 모든 것이 평온하거나 시끄럽습니다. 학생들 혹은 선생들, ­지난 수년간 대학 교수들도 엄청나게 많이 왔었습니다­ 감명을 받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게 보이고 매우 아파 보이는 사람들을 먹이는 우리들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난한 이들이 우리에게 소리치고 욕설을 퍼부을 때 참습니다. 그러면 방문객들은, 이 가톨릭일꾼공동체원들은 얼마나 대단한 천사인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점도 말해야겠어요: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방문할 때에 우리는 약간 천사처럼 보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웃음짓고 더 부드럽게 말하는데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거나 위선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점심식사 때에 우리가 섬기는 손님들에 대해서 어떤 의무가 있는 것처럼, 방문객에 대해서도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방문객들과 말할 때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우정을 갖고 다가오는 방문객들과 층계에 앉아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은 우리가 훌륭하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무례한 행동입니다. 어쨋건 이 문제는 옳거나 그른 것을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악마와 성인들의 문제로 갈라놓을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악마 혹은 천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서로에게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피터는 그 무엇보다도 교사였습니다. 그리고 교사 이외에 그는 예수님의 열정적인 하인이었지요. 그는 “쉬운 글들”에서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교사가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가톨릭일꾼공동체에 와서 질문을 하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목표에 대해 물어볼 때에 내가 충분한 주의를 하지 않고(피터가 보기에) 사람들에게 식량과 옷을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에 피터는 때때로 나에게 성급해졌지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할 수 있는 껏 명료해져야 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는 우리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인 애덕활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복음을 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항상 나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그런데 방금 내가 말했던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세요? 그건 하인으로서 추구하는 어떤 만족감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만족감은 과다한 감정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되기 위하여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 독선적인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열심히 해서 애덕 활동가가 될 수 있으며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축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자신에게 너무나 기뻐서 돌아다닙니다. 교만함의 죄이지요(도로시 데이는 늘상 독선적인 것에 대한 유혹을 두려워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도로시 데이는 이 자만심의 문제와 끊임없이 씨름하였으며,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는 시도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존중적인 성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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