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위를 보며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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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위를 보며 걷자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7.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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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 이민희, 팜파스, 2013 를 읽고

때 이른 장마처럼 하루걸러 비가 옵니다. 산기슭에선 밤꽃 향기가 뇌에 스미는 것처럼 정신을 잠시 아득하게 만들고, 파주 집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상은 단조롭고 고요합니다. 한꺼번에 쏟아지듯 봉우리를 터뜨리던 장미도 한풀 숨이 가라앉고, 지금은 백합이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조만간 백합 향이 밤꽃 향기를 덮을 것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미끄러지는 의식은 과거를 뒤살피게 합니다. 청춘이란 말이 어울릴 그때 그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그립습니다. 이런 생각에 끄달리는 것은 아마 나이 탓도 있을 테지요. 그냥 의식으로 가장한 무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 봅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초원다방입니다. 최루탄 냄새를 맡아야 내 세포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던 시절입니다. 그 1980년대 초입에 서강대 정문 건너편 지하에 있던 초원다방엔 LP판이 촘촘한 꽂혀있는 박스가 있었고, 우리들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자기 듣고 싶은 노래를 직접 전축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제게 무조건 첫 곡은 조용필의 ‘친구여’였습니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 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친구가 중요했던 시절입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파전 한 장 시켜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아침이슬’을 불렀던 ‘막집’에서 온갖 이야기를 섞던 동지이기도 했던 겁니다. 그때 애창곡 중 하나가 ‘동지를 위하여’였던 것은 그 시절을 건너온 사람이 감당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던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죽이던 흐느낌도
피투성이 비구름 되어
진달래 타는 언덕 되어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었소
우리 지금 여기에 발걸음 새로운데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황토굽이 먹구름도
굽이치던 그 물결도
살아오는 동지의 새 여명의 눈빛으로
간다 터진 물줄기로
간다 해방의 거리로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난데없이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 생각하는 데, 어찌 어제 일인 듯 삼삼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 중에는 간판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도 있고,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도 있지만, 이미 성급하게 숨 쉬는 세상을 달리 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 이름을 이참에 나직이 불러 봅니다. 김준백, 조관호, 두 사람의 영상이 또렷합니다. 시인 이상을 숭배하던 준백이는 암으로 십 수년 전에 죽었습니다. 제 결혼식 때 선물해 주었던, 지금은 고장이 난 것이지만, 그 금장 쾌종시계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잔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 준백이는 항시 제게 “너는 나의 머리이고, 나는 네 가슴이다”라고 했지요. 그때 저는 그 말이 좀 서운했지만, 그 친구 나름대로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하고 고백한 셈이겠지요. 조관호는 <생활성서> 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문득 시골로 내려가 농사도 짓고 한옥도 짓더니, 최근에 갑자기 이승을 접었습니다.

지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한 때를 공유했던 이들이 사라질 때마다 순식간에 외로움이 증폭됩니다. 회복될 수 없는 내 생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나는 나만 사는 게 아니라 너를 살기도 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때 읽게 된 책이 한 권 있지요. 이민희가 쓴 <왜 그 이야기가 음악이 되었을까>(팜파스, 2013)입니다.

 

이민희는 우리들에게 차지하는 ‘아리랑’에 버금가는 일본 가요로 사카모토 큐(坂本 九, 1941-1985)가 부른 <우에오무이테아루코>(上を向いて歩こう, 1961)를 소개했습니다. 일본어로는 <위를 보며 걷자>라는 뜻인데, 이민희는 이 노래를 소개하며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위를 보며 걷자”라고 적었습니다. 그 제목이 특별해서 당장에 유튜브에서 이 곡을 찾아 들었습니다. 아리랑처럼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며 애써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는 의지를 엿보았습니다. 과연 입에 읊조리며 새길만한 진언(眞言, 만트라) 같은 노래입니다.

<위를 보며 걷자>는 한대수도 부를 만큼 유명한 곡인데, 1963년에는 미국에서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3주 연속 1위에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어 버전이 아니라 일본어 버전으로 아시아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프로필을 살펴보니, 사카모토 큐는 전업가수가 아니더군요. 영화배우이며 탤런트, TV 쇼 프로의 MC 등으로 연예계에서 재능을 보이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인권운동가라는 타이틀도 붙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용모 자체가 정이 가는 얼굴입니다. <위를 보고 걷자> 이후로도 사카모토가 부른 <올려다 보렴 밤하늘의 별을>(見上げてごらん夜の星を), <내일이 있으니까>(明日があるさ), <그리운 Love-song>(懐しきlove-song), <마음의 눈동자>(心の瞳)를 보면 노래 제목만으로도 정이 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이는 1985년 8월 12일 마흔셋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도쿄에서 0오사카로 지인의 선거 유세를 응원하러 가던 도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자못 희극적인 연기를 선보이던 사카모토가 하늘에서 죽을 때, 그 죽음을 애도해 주는 것 또한 그의 노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위를 보며 걷자>에서 줄곧 “행복은 구름위에 행복은 하늘위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思い出す春の日 一人ぼっちの夜
생각이 나는 봄날 혼자뿐인 밤

上を向いて歩こう にじんだ星をかぞえて
위를 보며 걷자 번지는 별을 세면서

思い出す夏の日 一人ぼっちの夜
생각이 나는 여름날 혼자뿐인 밤

幸せは雲の上に 幸せは空の上に
행복은 구름위에 행복은 하늘위에

上を向いて歩こう 淚がこぼれないように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泣きながら歩く 一人ぼっちの夜
울면서 걷는 혼자뿐인 밤

思い出す秋の日 一人ぼっちの夜
생각이 나는 가을날 나 혼자뿐인 밤

悲しみは星のかげに 悲しみは 月のかげに
슬픔은 별그늘에 슬픔은 달그늘에

上を向いて歩こう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泣きながら歩く 一人ぼっちの夜
울면서 걷는 나 혼자뿐인 밤

一人ぼっちの夜
나 혼자뿐인 밤

 

 

“위를 보고 걷자 눈물이 넘쳐흐르지 않게” 이처럼 따뜻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울면서 걷는 나 혼자뿐인 밤”이라는 가사가 이렇게 경쾌한 리듬에 담겨 있으니, 슬픔이 마냥 슬프지는 않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우리에게 사카모토 규의 <위를 보며 걷자>에 필적할만한 노래가 있다면,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노래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슬픔 안에 머무는 자들을 위로하며 심금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끝없는 슬픔은 영원한 사랑으로 치유된다”고 하셨지만, 적어도 시와 음악을 아는 이라면, 끝없는 슬픔은 그 슬픔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으로 치유된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현실은 슬픔의 능력을 잃어버릴 때 발생합니다. 이소라는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게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마냥 슬프지는 않습니다. 나 또한 그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런 현실 인식이 우리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머리 위에는 바람이 불고, 뺨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호흡이 붙어 있는 이들은 계속 사랑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서 영원한 사랑을 기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쩌면 정말로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제의 사랑에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내일의 사랑을 붙들고 잇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오는 사랑을 거부하지 않고, 아직도 내가 누군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민희는 이 글의 말미에 “노래와 함께라면 세월도, 세대도, 직함도 중요하지 않다. <위를 보며 걷자>가 흐르는 순간 모두가 평등해진다”고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 구석진 30년 전 초원다방을 기억하며 조용필이 노래와 <동지를 위하여>, 그리고 사카모토 규와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참 좋습니다. 노래만으로 행복할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노래마다 그리운 사람들이 시공간을 넘어 나와 함께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지금 ‘나 혼자뿐인 밤’이라 한들 이 행복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슬픔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공동선> 2021년 7-8월호에 실렸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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