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교회를 찾아가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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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교회를 찾아가는 그리스도인
  • 최태선
  • 승인 2021.06.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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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엘 다녀왔다. 적은 무리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내 글이 그곳에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었다. 직접 나를 불러 그곳 예배에서 말씀을 들을 기회를 청한 것이다.

나는 나를 부르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분별한다.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이거나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을 지향하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들어야 할 복음을 예수의 제자들이 아닌 사람이 들으면 일단은 은혜를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후에 반드시 사단이 난다.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 내가 전한 말씀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 말씀을 전한 내가 문제가 된다. 그 말씀을 전한 내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가는 것 자체를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보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그런 준비를 돕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오랜 기간 교회를 다니고 다니던 교회의 일탈을 직접 목격한 경우도 하느님 나라인 교회로의 출발은 요원하다. 차라리 처음 복음을 듣는 사람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라.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오래 나가고 교회의 일탈을 목격하고 교회를 떠난 사람의 경우는 그러므로 그보다 더 확률이 낮다는 말이다.

어렵다. 진정한 교회,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것은 이처럼 어렵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무턱대고 시도라도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모임을 시작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그런 하느님의 백성,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 우연은 없다.

그래서 나는 시드(seed) 멤버가 될 사람들을 주님이 만나게 하실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오늘 내 글을 보고 내가 다녀온 곳에 모였던 분들이 실망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불가능성에의 열정”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것은 추호도 틀림없는 말이다. 산상수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산상수훈을 하느님 나라의 통치강령으로 살아내려는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기존의 교회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탈피해야 가능하다. 제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모두 청산하고, 새로운 계획에 대한 주춧돌을 쌓고 실제로 벽돌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일이다. 어렵다는 말만으로는 그것을 담아낼 수 없다.

그런데 그곳에 자신이 편하기 위해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 있다. 그분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의 생각을 그 자리에서 밝히게 했다. 그 사람은 과거에 다니던 교회와의 단절조차도 결단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과거에 자신이 교회에서 느끼던 편안함을 가까운 곳에서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구하는 편안함이 아니라 복음을 향한 열정이다.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천명할 때까지 그 모임에의 참여를 유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작은 시작이 제대로 '불가능한 교회(A Church to come)'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첫 시작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교회의 디엔에이가 형성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망설임이나 양보가 없어야 한다. 그래도 그 교회에 하느님 나라의 디엔에이를 새겨 넣기가 어렵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라.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달아났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듣고 보고 배운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제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지나야 했던 과정을 똑같이 지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열두 제자들처럼 십자가 앞에서 달아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이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일임을 전제로 삼게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영이 임하고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끄신다. 그들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수 있게 힘과 용기를 주신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다.

나는 그분들의 모임 가운데 그런 분이 있고, 그분의 망설임을 보게 하심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분들을 주님이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발적 동의’라는 말을 많이 나누었다. 자발적 동의가 없는 사람은 그런 모임에 합류할 수 없다. 아니 합류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곳에서 옛날 생물시간에 배웠던 리히비히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식물의 삼대 영양소는 질소, 인산, 칼리이다. 이 셋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식물은 그 부족한 영양소의 영향으로 잘 자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머지 두 영양소가 아무리 남아돌아도 결국 식물은 부족한 영양소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는 말이다.

하느님 나라인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하느님 나라 공동체에서는 가장 약한 지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이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된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그보다 더한 실천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체 가운데 가장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가장 약한 지체라도 예수의 제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결국 하느님 나라 공동체 자체가 와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교회를 시작하지 않고 시드 멤버들을 형성하려는 이유이다.

초기교회에서는 제자가 되려는 사람을 예배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육의 과정을 거치게 하였지만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는 예비과정을 거치고 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것이 초기교회가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어쨌든 나는 정말 놀랐다. 우리 시대에 그런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가서 확인해보고 싶고 기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을 다녀온 후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곳의 모임이 정말 이 시대 남은 자들을 만드시고 선택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산청공동체가 정말 하느님 나라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곳의 모임을 성령이 인도하셨다고 믿는다. 특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분의 참여를 그 자리에서 생각하게 하신 것은 주님이 그곳의 모임을 정말 하느님 나라인 성령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한 개입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곳 모임을 공동체의 모임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사전 예비 모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 나라인 공동체를 직접 건설하기를 원한다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에 합류시켜서는 안 된다. 그를 교육하고 준비시키는 다른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이어야 한다.

아래 "세이비어교회의 정식교인이 되는 서약"이 참고가 될 것이다.

* 나는 오늘 특정한 의미에서의 ‘교회’에 참여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하느님의 은혜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을 일컫습니다.

* 나는 교회의 역할이, 찬양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이 땅에 증거하는 하느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 나는 사도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과 같이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 나는 아무 주저함 없이 내 삶의 모든 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을 약속하며 나의 삶과 모든 운명을 예수 그분께 맡깁니다. 나는 가장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것입니다.

* 나는 이 일을 위해 아무리 시간과 노력, 재물이 많이 들지라도 그와 상관없이 성숙하고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 나는 하느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며 근원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새 삶의 재물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주권을 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인이시고 나는 빚진 자입니다. 하느님께서 후히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나 또한 남에게 베풀 때에 후하고 거리낌 없이 베풀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사랑의 삶을 가르치시고 몸소 본을 보이셨던 것을 기억하며, 나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룹을 사랑하며, 모든 계층, 인종, 그리고 나라들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분쟁, 공적인 다툼과 전쟁을 끝마치기 위하여 화해의 삶을 사는 중재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나는 내 삶의 모든 부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맡기겠습니다.

*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옮겨간 그곳에서도 비록 전과 다른 모습일지라도 그곳의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여하겠습니다.

만일 내게 축복할 수 있는 권리가 정말 있다면 산청 공동체가 세이비어교회와 같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축복할 것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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