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마라 대주교, 예수의 빛에 관통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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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라 대주교, 예수의 빛에 관통된 사나이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6.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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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요한복음 묵상 [지상에 몸푼 말씀]-16

아름다움에 관하여

-고정희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호박꽃보다야 장미가 아름답고요
감꽃보다야 백목력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어여쁜 말들을 고르고 나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지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이란 죄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다보니
남은 건 다름아닌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에도
몹쓸 괴질이 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일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데 서른다섯 해가 걸렸다니 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요한 8,12-18)

그리스도가 양심의 문을 두드리도록

어느 날 어부들이 카마라 대주교에게 와서 “주교님, 강과 연안에서 이제는 더 이상 물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애들과 함께 굶어 죽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우축 공장이 세워진 후로 거기서 나온 화학 폐기물질이 강과 호수를 오염시켜 거기 사는 생선들을 모두 죽여버렸던 것이다. 헬더 카마라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를 믿고 찾아온 사람들을 실망시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운명을 개척하고 또 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어야 했다. 그는 미국 흑인들을 위해 싸웠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을 떠올리고, 기업주의 양심에 호소하고 또 기업주와 어부들 사이의 대화를 주선하기 위해 어부들과 함께 새로 지은 공장을 향해 행진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부들은 행진을 준비했고 그는 그 지역 주둔 사령관의 허가를 얻는 일을 맡았다.

그는 장군에게 문제점과 행진의 뜻을 설명했다. 이것은 어부들의 생존권을 앗아간 불의를 해결하기 위한 질서있고 평화로운 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장군은 그것은 정치선동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행진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카마라는 이것은 자기가 주관하는 종교적 ‘행진’이라고 설명했고 따라서 장군도 종교적 행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간섭할 수가 없었다.

카마라는 회사간부들에게 어부들이 올 것이며 그들이 회견을 원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고 나서 정해진 날에 ‘빈곤의 행렬’이 이루어졌다. 브라질의 먼지투성이의 붉은 흙길을 따라 수백 명의 남녀 노소가 맨발에다 남루한 옷을 걸치고 행진을 했다. 아이들은 영양실조 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행렬 선두에는 어망이 걸린 나무 십자가가 길을 인도했다. 어부들은 죽은 생선을 손에 들고 갔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물질적 삶의 상징이었다(물고기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그들은 주교의 안내를 받으며 강가에서부터 공장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이 공장 건물에 가까이 왔을 때 그들은 장전한 기관총을 든 경찰들에게 포위된 것을 알게 됐다. 기업주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넋을 잃고 절망에 찬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카마라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공장으로 밀고 들어가 모두 다 부숴버리기라도 할 태세였다. 그들은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처지는 나빠질래야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카마라는 그들이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힘을 보여주라고 하면서 부자도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또 단 한 번 그들의 양심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가난한 어부들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들의 양심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내일 다시 와서 문을 두드려 우리의 호소를 거역할 수 없게 하자!”고 하자 어부들은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굶주림과 비참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갈 생각이었다.

다음날 신문마다 그 사건을 보도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기업주는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비난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같은 날 기업대표들은 어부들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곧 이어 폐수 방류가 중지되었고 어부들은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몇 세대가 지나도록 숙명처럼 빈곤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어부들이 그들의 삶과 권리를 위해서 투쟁할 힘이 자기들 안에 있다는 것을 체험한 최소의 사건이었다. 정의와 사랑과 희망의 힘, 이것이 가난한 자들의 무기였다(손규태, 「혁명적 신앙인들」, 한국신학연구소, 97-98쪽 참조).

 

말 못 하는 자들의 목소리

레시페의 대주교 돔 헬더 까마라는 말 못 하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는 일, 즉 사회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의 음성을 사람들이 듣도록 만드는 일에서 자신의 과제를 발견했다. 브라질의 대도시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판자나 상자, 또는 깡통으로 지은 오막살이에 살고 있다. 그들은 거주지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아 언제든지 쫓겨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굴종하며 참고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읽고 쓸 줄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음부터 다른 사람보다 못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참한 상황을 견디면서 살아야 했다. 간혹 음성을 높여 저항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얻어맞고 고문을 당했는가를 잘 보아왔다. 체포된 사람은 거의 돌아오지 못했다.

카마라 대주교는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던 것이다. 160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60kg의 몸무게를 가진 그였지만, 양심에 호소하고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놀라운 강론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그는 겸손하게 청중들의 인간성과 정의에 호소했다.

“그대의 피부가 무슨 색이든 입술과 코와 몸집이 어떻든 그대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대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대는 머리와 심장과 열망과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그대의 인간적 완성을 위해 모든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대가 어떤 씨족, 가족, 종족에 속했건 그대는 인류라는 가족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대가 당하고 있는 불의는 이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대가 그대의 종족이나 민족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가졌다면, 인간다운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시오.”

그는 교회의 종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유혹에 대하여 묵상하였다. “극단적으로 영원한 삶에 몰두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세상 사람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전적으로, 의식적으로 철저하고 엄청난 변혁을 회피했고 우리의 영리함을 이용하고 오용했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동을 걸었다.… 매우 자주 우리 사회복지 기관들을 위한 부자들의 너그러운 자선과 정부의 지원은 우리의 판단과 행동 자체까지도 규정하는 진짜 유혹이 되었다.”

결국 카마라 대주교가 발견한 것은 정부와 부자들에게 의존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다 보면 결국 권력자와 부자들에게 운명을 맡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며,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후 카마라는 민중교육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일차적 목표는 문맹퇴치였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 삶의 처지를 개선하고 바꾸는 일에 손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빨갱이 주교라고 비난받는 카마라 주교

그러나 이러한 대주교의 노력이 모두에게 존경받는 것은 아니었다. 1968년 프로엔카의 대주교 시가우드는 ‘가족‧전통‧재산’이란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교회에 ‘공산주의 침투’를 경고했고 거기에서 카마라 주교의 이름을 공공연히 들먹였다. 그는 150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교회를 철저히 정화시켜 줄 것을 교황에게 탄원했다. 한편 ‘개발과 평화’라는 연구단체에서 카마라 대주교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 대주교 시가우드는 그 단체 의장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49쪽에 이르는 긴 글에서 그는 카마라는 위장한 공산주의자요, 혁명적 폭력의 신봉자로서 정부를 매도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과 빈민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언론과 정부, 그리고 고위급 성직자들로부터 비난의 폭격을 받고 있는 동안에도 그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정의와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신앙의 힘 때문이었다. 성서를 통한 진리의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

돔 헬더 카마라와 같은 이들은 일찍이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신 뜻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의 행동과 판단의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포 자체였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스스로 당신 자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8,13)고 대들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말씀하심으로써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율법에 따르면 두 사람의 증언이 요청되었듯이 예수님은 “내가 바로 나 자신을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8,18)고 주장하신다. 하느님과 자신의 내적 확신 이외에 제도가 부여한 어떤 권위도 상대화하신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증언을 뛰어넘는 공정한 판단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무슨 판단을 하더라도 내 판단은 공정하다. 그것은 나 혼자서 판단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판단하기 때문이다.”(8,16)

그러나 이 모든 말씀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증언에 대해서 말하자 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예수님과 하느님의 관계가, 하느님을 ‘아빠(abba)’라는 친밀한 말로 부르시는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님보다 경건한 체하지만 결코 하느님의 뜻도 그 아들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이 헌금궤(8,20)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헌금궤 속의 어둠에 갇혀 생명의 빛에 눈뜨지 못했던 것이다.

 

마무리 기도

사람들에게 빵을 주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리르 성자로 보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편든다고 하면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요, 하느님.

나는 왜 
내가 당한 피해는 잊지 않으면서
내가 행한 피해는 정당하다 하는지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께서는
늘 베풀면서도 피해자로 사셨고
결국엔 십자가에 다려 죽기까지 하셨음을
왜 우린 자꾸만 잊고 사는지요.
우린 아직 어둠 속에서
당신의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지금보다 빠르게
지금보다 지혜롭게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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