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석을 만나 사랑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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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석을 만나 사랑을 읽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6.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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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오래 묵은 누런 책으로 남몰래 읽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어딘가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어느 날 문득 달리 발신인을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카피라이트를 보고서야 후배가 편집했다는 걸 알게 된 책이 배송되어 왔습니다. 문학평론가 채광석이 지은 그 책이더군요. 참 고맙고 반가운 일입니다. “시경 삼백편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생각에 거짓과 사사로움이 없는 것(思無邪)이다.” 하는 공자의 말에서 가져온 ‘사무사책방’에서 새 장정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편집자는 “녹슨 쇠창살을 뚫고, 캄캄한 독재의 하늘 위로 폭죽처럼 쏘아올린 청춘의 화양연화”라고 이 책을 소개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채광석은 1975년 오둘둘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그가 ‘Better K’라고 부르던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냈던 편지모음이 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채광석은 연서를 써 보내고 있지만, 그 사랑은 그저 그런 연애놀음은 아닌 듯합니다. 채광석은 에리히 프롬의 글을 인용하며 “사랑이라는 것은 생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관계를 맺는 형태”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지며, 그의 행복과 성장에 주의하며, 그를 존경하며, 그의 마음의 핵심을 아는 것”이며, “서로의 본래 모습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하에 놓여진 두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랑을 채광석은 어쩌면 예수에게서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에서 탐독한 책들이 이걸 반증합니다. 채광석은 문고본으로 발행되던 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한 현대신서를 주문합니다. <한국의 기독교회사>, <성서의 실존론적 이해>, <성경의 형성사>, 역사와 증언>, <자아확립>, <현대신학자 20인>, <인간화>, <그리스도의 죽음>, <예수와 그의 시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빈곤에 도전하는 기독교> 등입니다. 당시 그이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꼭 10년 후에는 저도 일부 탐독했던 책입니다.

민중신학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그의 시 데뷔작인 <빈대가 전한 복음>에선 “사랑이란 남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것, 사랑이란 함께 긁으며 킬킬 웃는 것, 사랑이란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 사랑이란 피부병에 걸리는 것, 아아 사랑이란 용서하는 것”이라 합니다. 천상에서 놀던 사랑을 지상으로 내려놓은 것이지요. 천상의 하느님이 지상의 사람이 되어 우리들 가운데 남루한 당신의 천막을 치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그런 사랑이겠죠. 감옥에 갇혀 빈대에게서 사랑의 묘수를 배우는 시인입니다. 그 사람 채광석이 “불경하다고 하실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난 요즘 ‘예수’란 이름에 ‘내 친구’라는 ‘최대의 경의’만을 붙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사랑만이 꿈틀거리는 삶을 ‘내 친구 예수’와 더불어 나누고 싶어 합니다. 채광석은 예수를 “다정한 이웃” 정도로 보고 싶다 합니다.

“돈을 벌고자 애쓰고 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비틀거리며 한 가정을 이루고 한 사회에서 오순도순 살기 위해 속이고 싸우고 뒤죽박죽이 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삶, 앞을 지향하는 삶이 불안이 아니라 축복인 것이라고 소근거려주는 이웃, 거짓과 위선을 자기 본성인양 받아들이게 하는 제도와 구조의 속살거림으로부터 우리들의 본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는 이웃, 온갖 삶의 실의와 권태 속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항시 밝혀주고 있는 이웃, 나아가서는 언제나 쉽게 어깨동무하며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으로 예수는 이해됩니다.”(1976.11.20.)

채광석은 예수를 “어느 경우에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웃이며, 어느 경우에나 사랑을 거두지 않는 이웃이요, 언제나 웃음을 거두지 않는 친구”라고 말합니다. 채광석이 출역을 나가고 있는 교무과 사무실보다 옥사에서 더욱 실감하는 친구입니다. 예수는 따뜻하고 평온한 사무실에서는 부드럽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실체를 깨닫기가 무척 어렵다 합니다. 신새벽의 한기가 감방 안의 여덟 수인의 마지막 남은 온기를 찾아 살갗을 오르내리는 절박한 감방에서 예수는 더 적극적으로 현존하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다고 합니다. 그래요, 친구란, 연인이란 평상시보다 비상시에 더 생생하게 느껴지겠지요. 고난이 많아야 친구도 절박하겠죠. 그래서 채광석처럼 “작은 사랑의 고달픔”이라도 기꺼이 기쁘게 봉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대의 손가락에 염증을 피울까
그리움으로 곪을
우리네 아픔을 어찌할까 가슴가슴 부비며
나는 기도한다 님이여, 마침내
나는 무릎을 꿇고 덩치 큰 내 친구
예수의 아범
사람 좋은 하느님께
우리네 작은 사랑의 부끄러움을
감사하는 것이다, 님이여
작은 사랑의 고달픔을 님이여 우리는 함께
바치는 것이다. 하느님께 하느님께
우리 태어나 아픔으로나마 하나되어 있음을
울어 고해 바치는 거다. 님이여.”

채광석은 ‘빈대가 전한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의 시를 적었습니다. 소싯적부터 많이 들었던 시가 있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채광석은 “이 땅은, 내게 있어선 군대 시절에 많이 보았던 팍팍한 자갈밭임에 틀림이 없다. 그 자갈밭을 빈대도 기어가고 나도 기어간다.”(1977.6.13.)고 했습니다. 2021년 여러분이 밟고 있는 땅은 어떠신지요? 그럭저럭 견딜 만하던가요?

채광석은 “구원은 솟아오르는 불기둥으로 임재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가다밥으로 몸을 비우며 살아갈 뿐이다. 그렇다. 빈대거나 인간이거나 출생을 묻지 말고 그의 행위를 물으라. 구원의 기쁜 소식은 빈대의 삶이거나 예수의 삶이거나 온갖 삶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내 친구 예수의 아범/ 사람 좋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삶이 마냥 팍팍하다고 슬퍼하거나 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콘크리트 담벼락, 보도블록 사이사이 파릇하게 일어나는 강아지풀처럼, 어디서나 채광석의 기분 좋은 친구 예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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