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장관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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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장관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할 일 아니다
  • 가톨릭일꾼
  • 승인 2021.06.1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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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weheartit.com
사진출처=weheartit.com

천주교 대전교구장이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되었다는 소식이 톱뉴스로 보도되는 것을 보았다. 이해는 된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의미가 정말 복음적일까. 물론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관이 되신 분이 불쌍하다. 물론 장관 이전에 대전교구장이라는 직책만으로도 그분은 보통의 삶을 살 수 없는 분이 되었다.

두 가지 생각이 난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영화에서 교황이 흘리던 눈물이다. 또 다른 하나는 김수환 추기경이 하신 말씀이다.

프란치스코의 수도회 인가를 마친 교황은 거지꼴을 하고 물러나는 프란치스코를 보며 신음처럼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내게도 저 젊은이와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 …”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임종(매우 불경한 표현임을 안다) 직전 한 말씀이다.

“사제가 되고 추기경이 되어 가난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 말이 똑같은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분들은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신앙의 길에서 올라가는 길을 걸었다. 물론 그것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그러한 교회 안에서의 성공이 신앙의 길에서 멀어지는 첩경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희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올라가는 길이 희생의 길이기에 선택한 것일까.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가는 도중에 그만 올라가려고 멈출 수는 없었을까.

동창 신부가 생각난다. 그는 우리 반 반장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그 아이는 정말 과묵한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반장직을 잘 수행했다. 물론 공부도 잘 했다. 나중에 동창들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태식이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태식이는 신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능력을 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소식을 늘 기다렸다. 그런데 태식이는 도무지 소식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

나는 바오로딸서점을 애용했다. 갈 때마다 살피고 검색을 해보았다. 태식이의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러나 태식이의 책은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태식이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도 가졌다. 그러나 이제 나는 태식이가 정말 좋은 신부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비록 신부가 되었지만 태식이는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피한다. 나는 딱 한 번 제부도에 있는 그와 통화를 했다. 그 이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야기한 것처럼 그가 유명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내가 중학교 시절 태식이에게 가지고 있던 신뢰를 확인할 수 있다. 태식이는 신앙의 길을 잘 걷고 있다.

내가 처음부터 태식이의 이런 신앙의 길을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신학교를 가고, 목사가 되고, 교회를 하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능력주의, 성공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큰 교회 목사가 되는 것이 하느님의 은혜이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물론 사람들은 내 이런 생각을 약자의 변이나 내 실패의 합리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패와 몰락이 정말 감사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인정받는 자리에 도달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 함몰되어 그리스도를 좇는 신앙의 길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것도 기쁨과 함께. 그런 상황은 참으로 끔찍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일탈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길에서 벗어나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토록 피하시던 성공의 길, 올라가는 길이다. 그 길을 가시기 위해 그분은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받으셔야 했다. 그분은 정말 이기기 어려운 그 유혹들을 다 물리치시고 마침내 자신의 길을 완성하셨다. 그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십자가!! 그렇다. 그리스도의 길은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청 장관이 되는 것을 십자가라고 주장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 길은 내려가는 길이 아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분기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잘못이나 오해가 올라가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고사해야 한다. 그냥 고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피해 도망을 가야 한다. 그런 후에도 그 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첼레스티누스 V.처럼 해야 한다.

그는 정치하는 추기경들에 의해 교황에 추대되었다. 바보 같기 때문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라면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유력 추기경들이 그를 교황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교황이 된 후의 행보는 그들의 기대와 달랐다. 그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강론을 하고 교황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았다. 한 술 더 떠 교황청 안에 허름한 오두막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목적을 노리던 추기경들은 그런 교황을 감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에게 죄목을 씌워 귀양을 보냈다. 귀양 간 그곳에서도 첼레스티누스 V.의 삶은 한결 같았다. 신자들의 그에 대한 존경은 더 커졌다. 그러자 그를 교황으로 추대했던 자들이 자객을 보내 그를 살해했다.

나는 첼레스티누스 V.의 행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의 행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교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하느님의 은혜라거나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었다. 그러나 교황이 허름한 오두막에 산다면 추기경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살라는 것인가. 물론 그들도 허름한 오두막에 살면 된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귀양을 가야했고 자객을 맞아 살해당해야 했다.

첼레스티누스 V.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때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추기경들과 같은)에 의해 배척을 받고 살해를 당한다. 이 현상이 바로 세상의 저항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재로 세상의 저항이 아니라 교회의 저항이었다는 이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잘못된 곳은 개신교만이 아니다. 가톨릭은 이미 그렇게 오래 전부터 세상과 같아졌다. 그것이 서기 200년경이다. 교회가 조직화되면서 주교의 권위가 강화된 이후 교회는 그렇게 세상과 다르지 않은 곳이 되었다.

교황청의 장관이 된 분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족들 가운데 그런 그를 만류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 가지 말라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안타깝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그분의 사진이 기사에 실려 있다.

미안하다. 나는 장관이 되신 그분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애도를 표한다. 그 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죽는 길이다. 나는 그분이 생명의 길을 가시기를 바란다. 부득불 그 길을 가더라도 첼레스티누스 V.가 걸었던 그리스도의 길을 가시기를 바란다.

교황청도 큰 교회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현 교종이 하시고 있는 일들을 보면 존경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신교 신자로서 그런 교종이 부럽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들이 아무리 엄청나다고 해도 약함을 통해 흐르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악함을 통해 흘렀던 하느님의 능력이었다. 그것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약한 이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흘려보내신다. 강력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교황청과 큰 교회의 엄청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기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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