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제서품을 받고 대만에서 만 10년 정도 살다가 지금은 귀국해서 한국외방선교회 후원국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월호 사고가 터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저희를 후원하시는 분들의 자녀들이 희생되셨어요. 저는 그 소식을 듣고 그분들에게 조문을 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사제인 제가 저 사람들에게 과연 무슨 말로, 어떤 말로, 어떻게 위로를 드릴 수 있을 것인가. 너무나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 또한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함민복 시인이 시를 쓰셨어요.
숨쉬기도 미안한 4월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 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세월호 희생자를 그리고 그분의 유가족분들 앞에 세월은 2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대한민국 한복판이라는 광화문의 공기는 적어도 저에게는 숨쉬기조차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저의 강론을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오래된 영화를 ‘세븐’을 봤습니다. 우리 가톨릭계가 전통적으로 말하는 ‘칠죄종’ 일곱 가지의 죄.먹는 것을 탐하는 탐식, 재물을 탐하는 탐욕, 이성을 탐하는 음욕, 나태, 시기, 교만, 분노의 주제를 다룬 영화에요. 이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곱 가지 죄 말고 한 가지를 계속적으로 고발을 합니다. 그 죄목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무관심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영화 40분 정도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도시 사람들은 너무 남의 일에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게 아니라 “불이야!” 라고 외쳐야 돼요. 도와달라는 소리는 무시하고 불났다는 소리에는 달려오니까요.
‘이젠 세월호 이거 그만하자’, ‘그만 덮자’고 말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만약을 대비해서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불이야!” 크게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이 영화에 마지막에 주인공은 한마디를 더 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은 멋진 곳이고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첫 문장에서는 동의 할 수 없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는 나는 동의를 한다며 영화가 끝납니다. 첫 문장의 세상은 멋진 곳이라는 그 말에는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싸워서 지켜가야 한다는 그 말에는 동의를 한다고 말입니다.
창세기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 이런 표현이 나와요. 그런데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강생하셔서 본 인간의 모습들은 어떠했을까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아서 아파하고, 신음하는 그런 모습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표징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다.” 여러분들 ‘악’ 잘 아시죠? 절개가 없다, 영어로 표현하면 불충하는 사람, 내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는 사람, 내가 한 말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세대라고 하시면서 표징을 단호히 거부하신 분. 예수님이 본 인간의 세상은 멋진 것도, 아름다운 것도, 살기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사람들이 불충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대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2000년이 지난 이 광화문 한복판에 오셔도 아마 똑같이 얘기를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인도 간디 선생님, 제가 예수그리스도 다음으로 존경하는 그분이 말한 사회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일곱 가지 ‘악’과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치명적인 사회악 그것은 ‘원칙 없는 정치’였습니다. 원칙과 소신이 없는 정치,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일들을 국민들을 위해서 하겠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이런 일을 하겠습니다. 되고나서는 딴 소리를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요. 정치인들은 철새들이라고 하지요. 원칙과 소신 그런 것들은 다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노동 없는 부’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 얻는 부, 이것을 ‘악’이라고 했습니다. 불로소득, 도박 등등. 저는 도박장이 있는 정선 등에 가본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폐인들이야, 폐인.’ 땀 흘리지 않고 투기에서 단기간에 돈을 법니다. 부가 대물림되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무슨 죄겠습니까. 그런데 세금은 정확히 내라는 거예요. 그 세금도 내기 싫어해서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검사님이 순식간에 수백억을 벌어요. 저는 평생 벌어도 그 돈 못 버는데, 어느 변호사님은 오피스텔을 120채를 갖고 있대요. 진짜인가 모르겠어요.
세 번째 ‘양심 없는 쾌락’입니다. 성희롱 사건, 성추행, 성폭력 요즘 뉴스에 줄줄이 사탕으로 나와요. 네 번째 ‘인간성 없는 과학’, 과학이 인간을 좀 편하게 만들고 그런 과학이 되었는데 인간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살인,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거죠. 가습기 살균제 다 아시죠? 살인 무기들... 다섯 번째 ‘인격 없는 지식’, 여섯 번째 ‘도덕성 없는 상거래’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런 글귀가 있어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 갑질 현상 등 문제가 많습니다.
일곱 번째 ‘희생 없는 신앙’을 악으로 보셨습니다. 간디 선생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섬기라는 것. 사람을 섬기라는 것.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봉사하라는 것. 남을 위해 섬기지 않는 신앙, 봉사하지 않는 신앙은 악이라고 간디선생님은 보셨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살만한 곳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거 같습니다. 간디 선생님이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 그 사회악이 발악을 하는 사회처럼 보여요. 그 악들이 힘 있게 활기치고 돌아다니는 그런 세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사회악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루카복음 10장,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학자가 물어보는 겁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강도를 만나서, 저는 그 강도가 사회악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악에 초죽음이 된 그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루카복음 16장에는 이렇게 비유를 합니다. 부자와 라자로, 부자가 집밖에서 종기투성인 그 라자로에게 말 한마디 합니까? 전혀 말 한마디 안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죽은 다음에 그 세계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두 가지 예수님의 이런 비유의 가르침은 무관심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야고보서 4장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선한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악들에 침묵하고 무관심 하면 그런 악들은 점점 세력을 키웁니다.그래서 나를 향해서 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을 향해서 오고, 우리 교회를 향해서 오고, 세력이 엄청 커지면 그때는 막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막는다 해도 엄청난 희생이 필요해요.
둘째,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2장,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굴복 시키십시오.” 악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굴복하지 말라는 거예요.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그런데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거예요. 악은 결코 악을 물리칠 수 없다는 거예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선밖에 없다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이 선하십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분들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희망이 우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희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희망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셋째, 이 사회악이 발악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렵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저는 타이완에 살면서 큰 태풍이 불어오면, 자동차가 뒤집어 넘어지고,아름드리처럼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지만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가 바로 대나무에요. 대나무는 왜 안 넘어 질까. 대나무 뿌리를 보면 뿌리들이 서로 막 뒤엉켜 있어요. 손과 손을 꽉 잡고 있어요. 아무리 큰 바람이 불어와도 대나무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 땅은 멋진 곳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행복을 느끼고 살만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싸워서 지킬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손에 손을 잡고 꾸준히 선한 일을 향해서 나갑시다. 여러분, 옆 사람의 손 한번 잡아보세요. 내 따뜻한 마음을, 내 따뜻한 온기를 옆 사람에게 전해주세요. 세상의 많은 선남선녀들을, 우리 이 광화문 자리에 초대합시다.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뛰어와서 우리의 손을 꽉 잡을 수 있도록, 함께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우리 한 번 큰 소리로 외쳐봅시다. “불이야!” 더 큰소리로 외쳐 보겠습니다! “불이야.” 스트레스를 저 파란지붕으로 날려 보내세요. 깜짝 놀라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크게 외쳐보겠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강론_ 유철 신부_한국외방선교회
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