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인이 종신서원 하는 교회
상태바
모든 교인이 종신서원 하는 교회
  • 최태선
  • 승인 2021.05.31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선 칼럼

한 신부님을 알게 되어 초대를 받았다. 초대 장소는 노인요양원이었다. 원장님이 안내를 해주었고 요양원 측에서 준비한 점심을 잘 대접받았다. 천주교 시설의 기관장이 일반 신자라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이 지도하시는 요양원과 병원이 여럿이었다. 그 시설들의 장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신부님은 내게 강의는 아니지만 좋은 말씀을 부탁하였다. 갑작스런 부탁이었다. 아무튼 이런 만남을 통해 천주교의 시설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중 특이한 것은 내가 일반 신자라고 생각했던 시설의 원장님들이 모두 9년 동안 수녀였던 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시설의 원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종신서원 직전에 환속한 수녀 출신 분들이었다. 나머지 한 분은 그 신부님의 여동생이었다.

여러 이유로 수녀님들은 종신서원 직전에 환속을 한다. 그러나 환속을 하는 경우도 수녀라는 의복을 완전히 벗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천주교 시설의 장과 같은 일을 하면서 수녀가 아니면서도 수녀처럼 살게 된다.

 

사진출처=catholicgentleman.net
사진출처=catholicgentleman.net

 

우리는 종신서원을 수도원의 수사나 수녀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종신서원을 하는 공동체들이 있다. 먼저 아미시 공동체가 그런 곳이다. 아미시에서는 아이들이 아미시 학교를 마치면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을 세상으로 나가 살게 해준다. 그 기간 동안 살 수 있는 돈을 제공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대략 6개월에서 일 년을 그렇게 산다. 그런 후에 공동체로 돌아와 공동체에서 살 것인지 세상으로 나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아미시는 특히 엄격한 삶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지금도 수공업 시대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공업에 의존한다. 농사도 트랙터가 아니라 말을 이용한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아직도 마차를 고집한다. 전화기도 위급한 상황을 위해 한 곳에만 설치해 놓는다. 핸드폰은 꿈도 꾸지 못한다. 컴퓨터도 워드 기능만 사용하고 인터넷은 사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그것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혹은 컴퓨터처럼 워드기능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들이 그런 것들을 그렇게 일일이 결정하는 이유는 세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절제된 삶을 살다가 핸드폰과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함은 물론 세상의 자유로운 문물을 대하면 청소년기이거나 청소년기를 갓 지난 청년들로서는 유혹을 받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아미시 청소년들이 세상을 택하지 않고 공동체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그들이 세상을 살아보고 세상을 경험한 후에 그들은 공동체의 멤버로 살 것인지를 결정한 후 종신서원과 같은 세례를 받는다. 나는 그들의 세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종신서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세례는 일종의 종신서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종신서원이 수도원의 특별한 규례처럼 여겨지는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오늘날 세례는 형식적인 의례가 되었다. 아무도 세례를 받았다고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지는 않는다. 또 어떤 교회의 정식교인이 되었다고 그 교회에 평생을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례는 그야말로 엄숙한 선언이자 공표였다. 세례는 하느님의 가족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임과 동시에 세상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명실상부한 출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그 의미가 약화된 정도가 아니라 의미 자체를 상실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례의 타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례의 타락 

세례의 타락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나는 자매와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이유는 실제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매와 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자매와 형제라는 단어는 초신자를 일컫는 말이 되지 않았는가. 어떤 의미에서 신앙이란 말의 회복이다. 특히 자매와 형제라는 단어의 의미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그 단어들이 회복되려면 세례의 타락을 극복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무분별하게 세례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세례는 그야말로 신중하고 엄숙한 자발적 동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교회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정의 과정을 지나도록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동의이다. 세례를 받는 사람 스스로 자신이 세례의 의미와 세례를 받음으로써 달라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때 세례는 세례로서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도 종신서원을 한다. 세이비어교회에서는 종신서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정식교인으로서의 서약을 한다. 사용하는 말이 달라도 나는 이것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9년이나 수녀원 생활을 하신 수녀님들이 왜 마지막 종신서원을 하지 못하겠는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그것이 급진적인 복음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은 급진적이다.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데리다가 말한 ‘종교란 불가능성에의 열정’이란 말은 정말 적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 급진적이라는 것도, 복음대로 살려면 불가능성에의 열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냥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 교회에서도 종신서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타락

아미시의 청년들처럼 학교를 마친 후에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본 후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처럼 일정 기간을 공동체에서 살아본 후에 종신서원이라는 결정의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세이비어교회처럼 소정의 과정을 거쳐 정식교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사표명과 전체 교회의 멤버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실제로 살아본 후에 결정되고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왜 교회에서 이런 과정들이 생략되었는가. 고구마처럼 푹 찔러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를 보고 전도를 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교회의 타락 때문이다. 교회는 더 이상 하느님 나라의 전초기지도 아니고 모두가 자매와 형제로 만나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사는 예수의 제자들의 사회도 아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교회들을 교회라고 부르도록 허락했는가.

세습이나 성추행이나 헌금 유용과 같은 일탈이 일어나지 않아도 오늘날 교회는 교회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것은 모두가 자기 교회에 함몰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자기 교회를 돌보는 것이 목회인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와 상관없는 일이다. 자기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성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상조회에 충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회가 정말 교회라면 자기(우리) 교회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자기 교회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교회는 결코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교인들을 훈련시켜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일꾼은 자기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꿈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회복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 나는 종신서원과 같은 결단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교인이 될 수 없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돈이라는 사실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 나라에는 영웅도 엘리트도 없다. 높낮이도 없다. 그래서 반드시 모든 교인들이 종신서원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