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한편으론 교회에 순종하고, 한편으론 교회에 도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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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한편으론 교회에 순종하고, 한편으론 교회에 도전하며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5.31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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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콜스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피터 모린은 자신의 열성적인 학생, 도로시 데이를 위해 가톨릭 역사 안에서 선각자들을 찾아낸다. 이들은 교회의 권위에 대해 찬란한 불경(不敬)과 회의를 표현했던 사람들이다. “순종은 옮기 쉽고, 해독(害毒)을 끼치기 쉬우며 심지어 생명에 위협까지 줄 수 있다”고 도로시 데이가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피터 모린에게 그렇게 말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피터 모린은 이에 대한 대답을 바로 도로시 데이가 갖고 있는 책 중에서 발견했다. 도로시 데이는 말한다: 

“아마도 그가 나를 가르치겠다고 결정한 것은 내 책꽂이를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내 책곶이에는 아빌라의 데레사의 삶에 관한 책들, 그분의 저서들이 있었지요. 특히 데레사 성녀의 영적 기반과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에 관한 책들도 있었습니다. 피터는 ‘아, 당대에 영향을 미쳤던 성인이 여기 있네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즉시 성녀 카타리나가 14세기의 교종들과 다른 공직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에 관해 토론이 벌어졌어요. 카타리나 성녀는 이 편지들에서 그들의 잘못에 대한 과제들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꽤 여러번 이런 문제로 돌아가서 피터 모린이 그에게 가톨릭 불복종자들의 긴 역사, 교회를 개혁하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어지는 투쟁들, 한편으로 교회에 순종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교회에 도전하는 이 투쟁의 역사를 가르쳤을 때에 느꼈던 흥분과 열광을 다시 붙잡아 보려고 애썼다.

피터 모린은 시민 개혁가였으며, 미국이 보다 더 정의로운 국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할 만큼 충분히 미국을 사랑하였다. 이제 가톨릭 개혁가가 되고싶은 열정으로 그는 교회 초기에 행동가들과 세상의 온갖 권력 왕좌에 앉은 탐욕스럽고 부유한 성직자들 사이의 대립의 역사를 아는데 몰두했다. 도로시는 피터 모린이 공급해 주었던 (아마도 실제로 그 둘은 서로에게 공급했을 것이다) “양질의 지적 음식”을 먹고 있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한동안 가톨릭 산문들과 소설들에서 이런 측면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는 교회가 문인들과 정치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어했다. 또한 그는 교의에 충실하고 특별한 권위와 그 “무류성”을 주장하는 기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의 자유가 얼마나 허용되었는지도 알고 싶어했다.

 

교회 권위에 대한 이 같은 정신의 독립은 도로시 데이의 후기 삶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63년에 쓴 <빵과 물고기>는 “가톨릭일꾼 공동체의 이야기”로 쓴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가톨릭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회는 스승이 십자가에 못박히던 전날 저녁에 스승을 세 번이나 부정했던 바위, 베드로 성인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를 바다에서 고기로 가득찬 그물을 끌어올린 것에 비교하였다. 이 고기들의 상태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몇몇 비가톨릭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고기들 중에는 또한 몸이 부풀어 올라오는 복어 같은 고기들과 아주 소수의 상어들도 있었다’”.

친구들의 이와같은 비유를 도로시 데이는 꽤 여러 번 인용하였다. 그는 유쾌하게 비꼬는 유머 감각이 있었고 가짜 신심을 즉시 냄새 맡을 수 있었다. <빵과 물고기>를 쓴지 10년 후에도 나는 그가 여전히 비슷한 기질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때는 이런 생각도 했었지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동전을 내는 것을 중지시키고 그들에게 대교구의 사무실로 행진해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호화로운 방에서 나가 굶주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나누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들이 수백만 달라의 돈을 저장하고 또 써버리는 은행들과 백화점 가까이 있는 크고 화려하고 냉방잔치가 되어있는 방에 앉아 계시겠습니까? 그분을 믿고 있는 수천의 사람들과 그분의 교회가 굶어 죽어가는 데도 그분이 커다란 검은색 리무진을 타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맨발로 누더기를 걸치고 오며, 굶주리고 병들은 아이들이 세계 도처에 있는데 그분께서 거대한 저택들과 화려한 장원들 그리고 호화스러운 여행을 보고 그냥 참으시겠습니까? 내 생각에 이런 사람들에 대한 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아니다! 라고 말입니다."

"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잠재울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같이 살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잊어버립니다. 또 다른 비가톨릭 친구 하나가 나한테 이렇게 말 한 적이 있습니다, '도로시, 예수님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았는데, 왜 가톨릭인들은 가지?' 나는 그가 어리석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즉 예수님께서 로마인들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고위 성직자들과 대립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친구는 계속 나를 밀어댔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자신들을 이웃에게 내어주기를 원했지, 빌딩과 제단과 성직자들과 교종들에 대한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시간과 돈과 신앙을 그 모든 것에 내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그가 옳다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내가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으며 교회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두 길을 다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갈 수 있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기도할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고 들으시는 분은 다른 분이 아닌 하느님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교회에 앉아 있을 때에 친구가 했던 말이 빗나간 생각인지 고해성사를 보면서 신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제는 웃었고, 말하기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은 그저 움직임만 따라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신부에게 때때로 울고 싶거나, 분노에 휩싸일 때가 많다고 말했지요. 교회에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미사에 갈 때 느낀다고 말하는 것처럼 차분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활력이 생깁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됩니다. 그리고 그분께 더 가까이 있을수록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죽기 전에 무엇을 했으면 하고 바라시는 것에 대하여 더 걱정하게 됩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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