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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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 최태선
  • 승인 2021.05.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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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어렸을 적에 나는 구치소를 방문하여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형이랑 둘이 ‘희망의 속삭임’을 불렀다. 어찌해서 그곳을 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아주 흉측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도 싶었다. 아무튼 나는 그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 사형수를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그 어머니는 다른 모든 죄수들을 아들처럼 보듬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많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로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자세히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한 결혼식장엘 다녀왔다. 요즘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일반적인가보다. 나는 그런 결혼식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일탈의 한 현상이 아니던가. 내 생각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은 일생의 가장 엄숙한 자리이다. 그래서 가장 엄숙한 의식으로 치러졌고,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기독교 풍의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가 목사나 신부가 아니더라도 존경하는 스승이나 사회적으로 덕망이 있는 사람이 주례를 맡았고, 주례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한 과정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단순히 프래그마티즘의 한 현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이다. 복합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개신교 그리스도교의 일탈이 거기에 한 몫을 차지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내겐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살기 때문에 오지 못한 신랑의 어머니의 해설을 듣고 나니 그 결혼식의 의미가 다시 생생하게 느껴졌다. 역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자세히 보는 사람들이 참 드물다. 자세히 보려는 사람들조차 거의 없다. 외국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말한다. 역시 그들은 한국 사람들을 자세히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따뜻하지 않다. 정말 냉정하다. ‘완장’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표리부동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굽실거리다가도 돌아서면 달라지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다.

베두인 족과 같은 사람들과 대조적이다. 그들은 사실 무뚝뚝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들은 달라진다. 그들은 환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표리부동한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환대를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끼는 것들을 아낌없이 대접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한국 사람의 인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살기가 좋으니 물 한 잔 대접하는 것의 의미가 생명과 분리되었다. 사막에서의 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흔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도의 역사적 지리적 특성상 오지랖이 넓으면 화를 당하기 일쑤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환대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텃세가 심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것이 한국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을 자세히 보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한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한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당에 나갔고, 성가정이 되길 기도하며 성가정을 이뤘는데, 얼마 전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종교가 없었으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를 보면 상처를 받게 돼 성당에 발을 끊었다며, 과연 하느님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자녀가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이 부모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모 역시 교리에 따라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명 이 부모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이기에 자세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비로소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소수자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 자녀라는 이유로 이 부모는 누군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모는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교회가 앞장 서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도록 부추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부모의 말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말이 있다.

과연 하느님은 있는가.

이 말에는 이 부모의 성소수자에 대한 많은 깨달음과 이해가 담겨 있다. 자기 자녀가 성소수자가 된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후천적이고 학습에 의한 일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성소수자인 자녀의 노력에 대해서도 부모는 알고 있다. 그리고 자녀가 성소수자인 것이 타고난 성향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비로소 성소수자인 자녀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성소수자들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성소수자인 자기 자녀만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성소수자들 역시 자세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된 이 부모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부모는 성소수자인 자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나는 이것이 이 부모에게 은혜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고 하나님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 부모야말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늘날 성소수자를 혐오하도록 부추기는 교회에 대해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교회야말로 하느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의 모임이다.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시라면 성소수자라는 불완전함은 나타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들은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함으로써 하느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창조의 완전성이 부인된다면 돌연변이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완벽한 창조라면 돌연변이는 또 무엇인가. 돌연변이 역시 창조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결국 완전하지 않으신 하느님은 유일신이 되실 수 없다.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나는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람을 자세히 보는 사람들로 만드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성소수자들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는 소외된 사람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사람 연기(演技)를 하며 살 수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하느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여기서 초남성이나 초여성(과학적인 유전자)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창조의 불완전함과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수수자들을 혐오하고 배제할 때 그들은 사실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수자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을 때 하느님은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이 되시고 만유의 주님이 되신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자세히 보는 사람들이 될 때 하느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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