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더 이상 홀로 아프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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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더 이상 홀로 아프게 하지 말자
  • 유대칠
  • 승인 2021.05.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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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칼럼
사진=유대칠
사진=유대칠

해조류와 패류를 바쳐야 하는 ‘잠녀역’(潛女役·해녀역), 전복을 바쳐야 했던 ‘포작역’(鮑作役), 말을 바쳐야 했던 ‘목자역’(牧子役), 귤을 바쳐야 했던 ‘과원역’(果員役), 이런 진상품을 잘 운반해야 하는 ‘선격역’(船格役), 그리고 관청의 땅에서 노동해야 하는 ‘답한역’(畓漢役), 이 ‘여섯 고역’(六苦役)이 제주를 힘들게 했다. 너무나 힘들고 힘든 고역이었다. 당장 이 많은 것을 바치기도 힘들지만, 중간 관리들의 수탈 역시 그 힘겨움을 더욱더 깊게 만들었다.

제주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그러니 고기잡이배를 타던 남정네들은 배를 타고 섬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의 수가 줄어들자 조선 정부는 법적으로 제주 사람은 제주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평생 제주에서 여섯 고역으로 힘들게 살아갈 뿐 다른 삶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힘겨운 삶에 그들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을 안아준 것은 그들의 종교였다.

제주의 신은 1만 8천이나 된다. 그리고 저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민중의 편에서 민중의 눈물이 되고 웃음이 되었다. 서구에서 들어온 거대 종교들의 눈엔 미신으로 보일지 모른다. 서구의 가톨릭교회는 1901년 제주 사람을 힘들게 했다. 조선 정부와 손을 잡고 제주 사람을 힘들게 하였다. 제주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는 우리가 아닌 남이었다.

서구의 개신교회 역시 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1948년 4.3의 그 잔혹한 살인의 현장에서 가장 잔인한 폭력을 일삼은 서북청년단의 상당수가 개신교 신자였다. 제주 사람들에게 그렇게 개신교회도 우리가 아닌 남이었다. 그러나 오랜 고난 동안 항상 그들의 편에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 그 1만 8천의 신들은 남이 아닌 우리었다. 항상 제주 사람들에게 우리였다.

제주의 '신당'은 성스러운 곳이다. 그들의 신앙이 드러나고 머무는 곳이다. 마을의 신인 ‘당신’과 사제와 같은 ‘심방’은 그들에게 성스러운 전통이며 위로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을 찍는다며 함부로 신당을 돌아다닌 것이 죄송스럽다. 나에겐 그저 관광의 대상이지만 그들에겐 소중한 신앙의 장소일 것인데 말이다. 함부로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불편했을 수 있겠다.

제주 ‘신당’에서 ‘심방’은 제주 4.3으로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였다. 4.3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금지되던 시기, 오직 신당에서 심방만이 그 날을 기억하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그날의 슬픔들이 기억되고 이어져갔다. 서구의 종교들이 그리고 조선 500년 동안 큰소리치던 성리학이 그들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있을 때, 신당의 심방은 제주 사람의 편에서 그들의 눈물이 되었다.

말로는 조선 사람이고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현실 속에선 조선 사람도 대한민국 사람도 아닌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심방은 너무나 고마운 사제였고 벗이었다. 제주의 아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 수산 마을 사람들을 위로하던 ‘진안할망신당’이 제주 제2 공항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오랜 시간 제주 사람을 안아주던 그 고마운 곳이 이젠 사라질지 모른다. 참 아픈 일이다.

 

진앙할망신당 (사진=유대칠)
진안할망신당 (사진=유대칠)

제주 수산 마을은 4.3의 비극 동안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은 곳이다. 그런데 그 마을엔 자신들을 죽이던 군인을 위한 비석이 있다. 정말 고마운 마음에 세운 비석이 아니라, 이젠 더 죽이지 말라는 애원의 마음으로 세운 비석이다. 자신을 죽인 이들을 향하여 고맙다며 비석까지 세워야할 만큼 그 날의 공포는 헤아리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산 마을엔 ‘군인굿’이 있다. 자신들을 죽인 군인에게 고맙다며 비석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굿도 한단 말인가? 이 굿은 4.3 당시 군인에 의하여 죽어간 이들을 달래는 굿이며 또한 자신은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즉 자신은 빨갱이가 아니니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국 전쟁 당시 자원하여 입대한 제주 사람들을 위한 굿이기도 하다. 그렇게 군인으로 죽어간 제주 사람들을 위한 굿이기도 하단 말이다.

‘군인굿’, 참으로 슬픈 굿이다. 그 슬픔을 간직한 제주 수산 마을이 제주 제2 공항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조선 시대에선 여섯 고역으로 아파했고 일제 강점기엔 일본에 의하여 아파했고 해방 이후엔 잔혹한 국가폭력으로 4.3의 그 참혹한 죽음을 경험한 수산 마을은 도대체 언제 더는 아파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젠 제주 제2 공항으로 아예 마을을 없애버리려 한다. 참 아프고 아프다.

제주 수산마을의 ‘주신’은 ‘울뤠모루하로산또’이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울뤠모루하로산또’는 천둥벼락이 치는 들판이란 뜻이다. 왠지 요즘 인기 있는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 ‘토르’가 떠오른다. 부디 ‘울뤠모루하로산또’가 수산 마을과 오랜 시간 제주 수산 마을 사람들의 아픔을 안아준 ‘진안할망신당’을 제주 제2 공항을 세우려는 그 야욕으로 부터 지켜주길 바란다. ‘토르’보다 더 강한 힘으로 말이다.

하지만 ‘울뤠모루하로산또’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더 많은 이 땅의 민중들이 더불어 분노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제주 사람들이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 모두가 더불어 분노할 때, ‘울뤠모루하로산또’도 더 큰 힘으로 일어나 제주 제2 공항으로 부터 제주를 지켜줄 것이라 믿어본다. 더 이상 제주를 홀로 아프게 하지 말자.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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