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움, 그래 너 블란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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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움, 그래 너 블란디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5.10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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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요한복음 묵상 [지상에 몸푼 말씀]-10

조카

- 곽재구

 

너를 보면 마음이 슬퍼진다
돌 지나 만 두살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고
엄마 아빠 또박또박 모국어도 배운다
네 눈에 보이는 세계는 그저 그대로 낙원
너의 사랑스런 세계의 꿈을 위해
회사원인 아버지는 하루품을 버린다
앞마당을 누빌 세발자전거를 사고
정의를 위해 쌍권총을 사고
네가 가지고 싶은 그 모든 낙원을 위해
너의 어머니는 적금을 붓고 밤이면
옛날 이야기와 성경도 들려준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너의 천국을 보면
독한 나의 마음이 슬퍼진다
네 다섯살 적엔 어머니와 아버지를 갖고
네 열살 적엔 선생님과 친구들을 갖겠지
그런데 네 스무살 적엔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
네 서른살에 무엇 하나 갖고 싶다 말할 수 있을까
네 마흔살에 집 한 칸과 마누라와
들콩 같은 새끼 몇 알을 가졌다고 해서
너는 네가 가질 것의 단 한 가지라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 눈에 고인 맑은 세계를 보면
마음 외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삼촌의 오늘이 또 한번 슬퍼진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요한 5,31-39)

리옹의 반체제 그리스도인

A.D. 177년 8월, 거대한 상업도시 리옹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단체’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잡다한 족속들로 이루어진 시민들은 공적인 로마의 제의(祭儀)와 황제숭배를 통해 통합되어 있었는데 유독 그리스도인들만 딴전을 피웠다. 야만족과 싸웠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공식 제의가 열렸을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가 강요한 ‘우상들’에게 예배드리기를 거절함으로써 이들 무신론자들은(로마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하역인부 · 보조직공 · 수공업자 · 소매상들을 동요시키는 것처럼 비쳐졌다.

이는 공개적인 반사회적 행동이었으며 어떤 사람들 눈에는 사회전복 세력으로 여겨졌다. 긴장이 생겨났으며 대결은 불가피해 보였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비천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형제애에 마음이 끌렸으며, 아직은 자기들에게 안정과 재물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로마 제국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던 중간계급은 그리스도인들을 더욱 위험인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공중목욕탕과 광장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대중에게 붙잡힌 신자들은 모욕당하고, 구타당하고 약탈당하고 돌팔매질당했던 것이다.

리옹은 제13보병대에 속한 6백 명의 로마 군대가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질서교란을 두려워하던 로마 군대는 마침내 12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불순분자’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속죄양은 공개적으로 심문받고 처형되었다. 희생자의 신체를 조금씩 세심하게 산산 조각내는 것이 권력의 영광을 기리는 하나의 훌륭한 예배의 본보기였던 것이다. 먼저 90세의 늙은 주교 포티누스가 죽임을 당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이 누구인지 묻는 사법관리에게 “만일 당신이 그럴만하다면 그분을 알게 될 것이오.” 라고 의연하게 응수했기 때문이다. 붙잡힌 그리스도인들은 근친상간이니 식인(食人)습관 등의 죄목으로 죽어야 했다.(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비공개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식을 리옹의 시민들은 사람고기를 먹는 예식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오! 사랑스런 블란디나

마침내 원형경기장이 열리고, 고문에 의해 강제로 꾸며진 조서와 함께 질투와 미움에 가득찬 이웃들의 고발이 뒤따르고, 희생될 신자들이 끌려 나온다. 경기장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다. 그 가운데 노예 블란디나가 끌려 나온다. ‘사랑스러움’ 이란 뜻을 가진 이름의 블란디나. 눈요기가 되고 매질의 대상이 되는 그녀의 벌거벗긴 아름다운 몸은 그들에게 횡재였다. 여러 날 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벌을 고안해 내느라 머리를 굴리고 이 불행한 여인은 안간힘을 쓰며 되풀이해서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다.” 마침내 그녀는 그물로 묶여서 성난 황소에게 던져졌다. 그때 이미 블란디나는 죽음을 초월해 있었다. 그녀의 동료 한 명이 이렇게 기록했다. “블란디나는 자신이 믿고 있던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연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재는 론강에 뿌려졌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 자신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 된다.” (요한 5,31)고 하셨다. 예수님이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18,37) 세상에 왔다고 빌라도 앞에서 밝힌 바 있지만 블란디나를 비롯한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죽었다. 예수님은 “나에게는 사람의 증언이 소용 없다.” (5,32) 고 말씀하셨지만 그를 증언하는 사람은 끝날에 기억해 주실 것이기에 순교자들의 영혼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요한도 진리를 증언하였다.” (5,33)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때 그 빛을 보고 대단히 좋아했다.” (5,35) 그러나 요한은 유다인들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환하게 타오르는 등불” (5,35) 이었을 뿐,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분은 모든 ‘성서’ (5,39) 가 증언하셨던 분이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성서의 각 말씀은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고 (12,38 ; 13,18 ; 15,25 ; 17,12 ; 19,24.36) 또한 성서는 곧 예수님에 관해서 말한다 (12,41). 그리고 예수님은 성서의 핵심이요 목적이다 (1,45 ; 2,22 ; 5,39.46 ; 12,16.41 ; 19,20 ; 20,9) .

요약하자면 순교자들과 요한과 성서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증인이시기에 무엇보다도 하느님 자신이 예수님을 증언해 주신다 (5,37) .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성취하라고 맡겨주신 일” (5,36) , 즉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포가 곧 예수님이 하느님 아드님이심을 증언하며 이는 아무도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모습을 본 일도 없지만(5,37) 예수님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보셨다는 데서 연유한다.

 

사람에게서 찬양을 구하지 말라

요한복음서는 예수께서 세상의 찬양을 받으려 하시지 않는다고 전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5,41) 그들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딴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 (5,43)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파견 받으셨지만 세상에 속한 거짓 예언자들은 자기 이름으로 파견된다 (신명 18,20 ; 예레 14,14-15 ; 23,25 ; 29,9.25.31) .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오는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송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맞갖는 것만을 추구한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는다.” (5,44)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시대에 살았던 켈수스에게 예수님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대단한 지식인이었던 켈수스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이집트를 여행하며 복음서와 성서문서를 두루 섭렵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경배하는 예수님이 만인의 찬양을 받을 만한 ‘슈퍼맨’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경악했다. 만일 하느님의 성령이 한 인간 속에 성육신했다면 적어도 그 인간은 모든 사람들보다도 몸집에 있어서나, 아름다움에 있어서나, 힘에 있어서나, 위엄에 있어서나, 목소리에 있어서나, 웅변술에 있어서나 뛰어나야 했다. 그러나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는 그가 보기에 왜소하고 추하고 고귀함이 엿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가 칭송받을 만큼 신화적인 영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참된 연설>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며 경멸했다.

“예수는 유다의 작은 촌락에서 노동을 해서 먹고살았던 한 가난한 시골뜨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 사람들이 볼 때 그는 불안에 찌들리고 정처없는 떠돌이였으며 열 명이나 열한 명의 세리나 어부와 같은 하층민들 중에서 주워 모은, 주종관계를 고백하지는 않는 부하들을 데리고 온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비굴하고 궁색하게 연명해 갔다. …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안다. 그의 친구들의 배신과 정죄, 학대, 처형의 모욕과 고통 …. 그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말했듯이 죽어서야 부활했고, 그 고난의 상처와 자기 손에 난 구멍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누가 보았던가? 당신들 스스로 자백하는 바에 따르면 공포에 사로잡혔던 한 여자였고, 또 그와 비슷한 상태에서 넋을 잃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아니던가.”

켈수스의 말에도 진실이 담겨 있다. 예수님이 로마의 상류층 지식인들이 보기에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천민에 불과했고, 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그런 예수이기에 그는 무식하고 열등하고 비천하고 단순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찬양을 받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1고린 1,22-23)

나의 영혼이 주님을 높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은 하느님 뿐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을 의롭다 인정하실 분은 예수님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기대는 세상의 기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며, 우리도 그분처럼 다른 가치를 갖고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세상이 거부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세상이 자기 이름으로 찬양하는 것들이 사실은 예수님이 거부하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황제를 떠받들라. 그분과 함께 법을 수호하는 일에 참여하라. 시민의 의무나 병역의무를 다하라. 법을 보호하고 경건하며 당신들의 몫을 감당하라.”고 강요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 광분하지 않고, 군수물자를 사들이는 데 쓰일 뿐인 세금을 내지 않으며, 황금신에게 예배드리지 않으며, 권력과 헛된 소비를 중단하고 세상을 흔들어 놓는 바람처럼 이렇게 도전해야 한다. “나의 영혼이 주님을 높입니다! 그는 힘있는 자들을 옥좌에서 내쫓았으며, 그는 비천한 자들을 높이셨습니다.”라고 응답해야 한다.

 

마무리 기도

나의 영혼이 당신을
드높이고 싶습니다, 주님.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증해 주시듯
우리도 당신의 의로움을 증언하고
거룩한 죽음을 거룩히
아름다운 봉헌을 아름답게
그리고 사랑스러움 안에서
평화를 거두고 싶습니다, 주님.

세상이 나더러
천박하고 무모하고
너무 이상적이며 현실을 모른다고
내두르고 모욕하고
거들떠 보지 않아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제가 되고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잉태하고
공동체를 키우며
공동체를 열매 맺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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