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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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다
  • 로버트 콜스
  • 승인 2021.05.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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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상 가톨릭 신앙을 헌신적으로 실천했던 도로시 데이는 자신이 강하게 거부했던 어떤 정책이나 실천을 주도해온 기관에 대하여 깊은 존경을 표현했다. 그는 엄청난 실패, 과오들 그리고 맹목적인 무지와 죄악의 기록을 지니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룩한 로마교회의 이름으로 비참한 전쟁들이 일어났으며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박해를 받고 살해당했고, 거짓말들, 방탕함과 사나운 방종이 일어났고 배반이 자행되었던 사실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자서전에서 자신의 개종과 개종 직후의 삶에 대해 묘사할 때 바로 이점에 대해서 교회에 존경과 함께 도덕적인 격분을 표현하며 토론하기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교회와 결혼했으며, 그의 결정은 교회의 한계를 알고서 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가톨릭 교회가 지상에서 신자들에게 수행하는 현세적 사명에 있어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하나도 없다는 데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매일 하느님의 가르침과 일치해서 살지 않고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선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우리가 우리들의 잘못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표와 의도에 따라서 판단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일단 세례를 받고 나면 온 세계에 “달콤함과 빛”이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그런 개종자가 아니었다. 그는 가톨릭이 되기 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고 가톨릭이 된 후에 그런 과제수행을 중지해야 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하지 못했다. 자서전인 <긴 외로움>에 보면 개종을 기뻐하는 승리에 찬 표현이 있지만, 개종자는 아직도 죄인이며, 그가 의탁한 교회 역시 심각하게 금이 갔다는 냉철한 인식에 의해서 그 승리는 제한되고 또한 검증을 거치고 있었다.

자신의 개종에 관한 이야기 다음에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세속의 이상들에 대해, 비록 그 이상들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하지만, 강력한 충실성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그는 종교생활을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뉴욕과 그밖의 곳에 있는 수많은 진지한 친구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교회를 어떤 편협한 특권의 요새처럼 보았던 자신의 관점을 이런 많은 친구들과 나누게 되었다.

“가톨릭이 된 후로 나는 조금씩 내 친구들과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가톨릭이 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이들 사이에 아무리 가볍더라도 어떤 장애물을 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지요. 그건 언제나 느껴지는 장애물이었어요.”

아마도 그는 약간 과장했던 것 같다. 꽤 많은 세속의 친구들, 그리고 결국은 그를 숭배했던 사람들은, 가톨릭주의에 대해 그들이 아무리 큰 회의를 갖고 있다 해도 또한 도로시 데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을 포용했지만, 끝까지 충실했다. 하지만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초기에 특히 (그리고 가톨릭일꾼운동이 그로 하여금 강력하게 또한 확신을 갖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전에) 많은 친구들이 “걸러지고 추려졌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추려진 사람들의 명단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생각했다. 사람들이나 장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톨릭이 되고 나서 초기에 어떻게 느꼈는지를, 자신을 교회의 성사생활은 사랑했지만 교회의 정치 사회적 삶에 대해서는 간담이 서늘했던 한 가톨릭인이라고 설명하고 싶어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록펠러 재단의 동상과 성 패트릭대성당. (사진=한상봉)
미국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록펠러 재단의 동상과 성 패트릭대성당. (사진=한상봉)

그는 이 설명을 압도적인 로마노 과르디니의 다음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이다”.

이 말이 그를 분명하게 사로잡았다. 나는 녹음된 테입에서 이 말을 열한 번이나 세었다! 이 말을 직접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 그는 이와 비슷한 안으로부터의 공격을 위해서 프랑수아 모리악이나 죠르쥬 베르나노스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 충실한 두 가톨릭 소설 작가들은 교회가 악을 비호하고 교회의 수많은 존경받는 관리들이 그 악을 배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착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제시할 때에 도로시 데이는 통렬하게 구체적이 되었고 나는 70세가 넘은 나이의 이 여성이 구체적으로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회의 이런 약점을 정리할 수 있는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 전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 그리고 전세계 곳곳에서 교회가 오늘날 가난한 이들에게,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부유한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덜 두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수년전 어느 가톨릭 교회들을 지나치며 걷고 있었을 때 그리고 움추러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울기 시작해야 하는지 혹은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그리고 시위를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부의 모습,­ 주교들이나 신부들이 살고있는 빌딩이나 주거지들, 그리고 이 주교들이나 신부들이 교회 안에서 혹은 가톨릭 출판물을 통하여 혹은 텔레비젼이 미국 가족 신문의 역할을 하기 전에 사람들이 읽곤 했던 많은 신문들에 발표했던 선언문들.

이곳의 추기경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하느님의 선호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 겸손하고 또 겸손한 예수님의 왕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거대한 회사들의 왕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톨릭 교회를 ‘거대하고 큰, 성공한 대기업, 국제적인 대기업’이라고 불렀던 한 맑시스트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도, 주눅이 들지 않았습니다. 난 그가 비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피터가 오기 전에 그것은 (정직하게 말하자면) 매일 매일 나를 압박했던 진실이었습니다. 나는 경제공황이 시작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얼굴에 수심을 가득담고 구걸하며 굶주리고 있는 것을 보았고 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맨해튼의 패트릭성당에서 나오는 아주 잘 차려입은 사람들, 모피옷에 영국풍의 정장들을 입고 오바에 번쩍이는 신발을 신고 머리는 높이 쳐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그들의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아주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 확신은 일요일날 한 시간의 미사로 하느님을 그들 편에 세웠다는 확신이었지요.

아, 내가 도대체 누구였기에 그 사람들을 비판합니까?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였습니까? 그러나 나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본 것에 점점 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나는 교회들이 문을 열고 가난하고 굶주리고 집 없는 이들을 안에 들어오게 하고 먹이고 있을 곳을 주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교회의 왕자들, 성직자들이 입고 있는 모든 황금과 모피와 화려한 보석들을 모두 팔아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얻고 추위에 떨지 않으며 거리에서 아무데도 갈곳이 없이 앓고 있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나의 교회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자,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급진적인 무신론자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대신하여 싸우고 있었고 나는 가톨릭인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나가서 좀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강론 중에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가장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가 그 자체를 멸망시키려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는 것­과 공산주의자들의 호전성­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나 교회는 자신의 창립자의 삶을, 그것은 분명 헨리 포드나 몰간의 삶이 아닌 삶인데, 그것을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자신들의 호전성은 또 어떻습니까? 교회의 강론들 중에서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공격적인 말들은 어떤 지경입니까? 수백 만명의 사람들이 ­수많은 가톨릭 교회 문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잊혀지고 있는 동안에 기도만 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것에 더 가지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교회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또 어떻습니까?”

논쟁을 잠시 멈추고, 도로시 데이는 꿀이 다 녹도록 차를 저었다.

 

[원출처] <Dorothy Day, a Radical Devotion>, Robert Coles, 1987
[번역문 출처] <도로시 데이, 뿌리로부터 온전히 살다>(<참사람되어>2002, 7월호)

로버트 콜스(Robert Coles)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과 및 사회윤리학과 명예교수. 청소년 문제 상담 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5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 1973년 미국의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아이들을 직접 취재하고 분석한 <위기의 아이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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